최근 한국 사회에선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화두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다른 것을 포기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직장 문화를 바꿔보자는 분위기가 거세다. 출세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검찰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수도권 등 중앙이 아니라 지방에서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검사들이 늘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달 13일 올해 상반기 평검사 인사에서 ‘육아 목적 장기근속제’를 도입해 처음 시행했다. 아직은 여성 검사들이 대상이지만 점차 남자 검사들로 확대될 것이란 기대가 검찰 내부에 적지 않다.

육아 목적 장기근속제는 지방 차치지청(차장검사가 있는 지청) 이상 검찰청 소속 여성 검사들이 최대 4년까지 같은 곳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본인 희망과 성적, 기관장 의견 등을 종합해 근속기간 연장을 결정한다. 올해 처음으로 대구지검, 부산지검, 창원지검, 광주지검, 천안지청 소속 여성 검사 10명이 근무지에 2년 더 남게 됐다.

검사들은 2년이 지나면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멀리 떨어진 새 발령지로 떠나야 한다. ‘경향(京鄕) 교류’를 원칙으로 하면서 주요 보직을 순환시킨다는 취지지만 지방에 남아 있길 원하는 검사도 적지 않다. 한 검사는 “검사들이 인사와 관련해 힘들어하는 건 자신이 어디로 갈지 인사 직전까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라며 “어린 아이와 함께 이주한 검사들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검사들은 장기근속제도 도입을 반기며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한 여성 검사는 “사실 육아 부담이 있는 검사들은 시댁이든 친정이든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근무 지원을 하는데, 부모님 댁 근처로 와도 2년 만에 반강제적으로 떠나야 했다”며 “새 제도가 반갑다”고 했다.

또 다른 여성 검사도 “아이를 돌봐주는 베이비시터가 만족스러울 때도 그곳에 정착하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라며 “육아는 여성만의 부담이 아닌 만큼 제도를 남자 검사들로까지 확대하면 검찰 가족의 일·가정 양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해당 제도 도입이 쉬웠던 것만은 아니다. 검찰 관계자는 “법무부 인사는 검찰 내부의 인연을 고려하는 등 복잡해서 10명만 인사를 안 내도 퍼즐을 맞추는 데 큰 어려움이 생긴다”며 “앞으로 지원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과감하게 새 제도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검사들의 ‘중앙’ 선호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젊은 검사 위주로 출세보다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면서 가족도 챙기는 삶을 원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 검사는 “삶의 근거지가 서울이 아니었던 젊은 검사들은 굳이 중앙으로 갈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며 “어디에 있느냐보다는 어디에 있든 자기 업무에 충실한 것이 중요한 만큼 분위기가 바뀌는 건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