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는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린다. 북쪽으로 북한산, 남쪽으로 한양도성 성곽이 뻗어 있고 동서로는 정릉천과 성북천이 흐르는 성북구는 조선시대부터 문화가 꽃폈다.

성북동과 정릉동을 중심으로 성북구가 보유한 문화재는 156개에 달한다. 고즈넉한 분위기 덕에 고급 단독주택도 많다. 서울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기 전인 1970~1980년대엔 ‘서울의 1세대 부촌’으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개발 호재가 적었던 서울 동북부에 자리한 탓에 경제·생활 인프라는 해가 갈수록 낙후됐다. 1991년까지만 해도 54만여명에 달하던 인구는 지난해 46만여명으로 15%나 줄었다.

성북구청이 ‘오래된 미래’라는 콘셉트로 도시 활성화 및 재생을 선언했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근현대 역사의 숨결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성북동의 역사 유적을 복원하고 각종 문화시설을 연결하는 데에 2019년까지 683억여원을 투입해 성북구를 역사·문화 관광의 중심지로 조성하기로 했다. 성북동에서 말년을 보낸 독립운동가 만해 한용운 선생 선양 사업에도 나선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한국의 정취를 느끼려는 내·외국인의 발길을 잡아끄는 관광명소를 만들어 성북의 성장사를 다시 쓸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문화자원을 도시재생 디딤돌로

한양도성 길에서 본 성북구. 성북구청 이금선 씨 제공
한양도성 길에서 본 성북구. 성북구청 이금선 씨 제공
성북구는 2013년 11월 성북동 역사문화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해 도시재생의 신호탄을 쏴 올렸다. 대상지는 한양도성 북쪽에 있는 성북동 일대 133만8000㎡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유택 ‘심우장’, 조선시대 왕비가 누에 농사의 풍년을 빌던 제단 ‘선잠단’, 조선 고종의 아들 의친왕이 살던 별궁의 정원인 ‘성락원’ 등 유수한 역사문화자원을 품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개발이 중요했던 산업화 시대엔 빛을 보지 못했다. 시인 김광섭은 1968년 성북동을 배경으로 한 시 ‘성북동 비둘기’에서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고 읊조렸다.

성북구는 선잠단 복원과 정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학술용역을 거쳐 시굴과 정밀 발굴을 위한 조사를 마쳤고, 올해 본격 발굴에 들어갔다. 선잠(실크)박물관 건립에도 착수했다. 올해 부지 매입과 기본 실시설계를 거쳐 내년에 조성할 계획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 길상사도 성북동에 정취를 더한다. 이곳은 원래 청운각, 삼청각과 함께 ‘서울의 3대 요정’으로 불린 고급 요릿집이었다. 대원각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을 운영하던 김영한(법명 길상화) 씨가 법정 스님의 무소유 철학에 감화돼 1995년 건물을 조계종에 시주하면서 사찰로 다시 태어났다. 고급 한정식집으로 명맥을 잇고 있는 삼청각은 서울시가 110억원을 들여 한식 홍보공간으로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

성북동이 꾸는 또 다른 꿈은 ‘박물관 클러스터’다. 성북동 박물관의 대표 주자는 한국가구박물관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 등 해외 명사가 한국에 오면 한 번은 방문하고 지난해 3월 130년 만에 한·불 전략대화가 열린 곳이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1938년 세운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 우리옛돌박물관, 누브티스넥타이박물관 등 다양한 분야의 박물관도 있다. 크고 작은 갤러리·공방들도 성북동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한용운이 북향집 짓고 산 ‘항일운동 성지’

성북구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에도 착수했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활동한 한용운 선생의 삶과 업적을 알리는 사업이 그 첫 단추다. 한용운 선생은 1933년 성북동에 심우장이라는 한옥을 지었다. 한옥은 통상 남향으로 짓지만 심우장은 북향집이다. 선생은 남향으로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를 마주보게 된다는 이유로 반대편 산비탈의 북향 터를 선택했다. 선생이 1944년 생애를 마친 이곳을 성북구는 ‘항일운동의 성지’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김 구청장은 지난달 28일 한용운 선생의 생가가 있는 충남 홍성군,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다 수감된 서대문형무소가 있는 서울 서대문구 등 총 10개의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 지방정부행정협의회’를 꾸렸다. 김 구청장이 사무총장을 맡았다.

성북구는 올해 기념사업 콘텐츠를 개발하고 한용운 선생을 기리는 창작뮤지컬 ‘심우’ 공연을 올리는 등 사전 작업에 나섰다. 한용운기념관 건립을 위한 부지를 내년에 매입하고 2019년엔 기념관 기본 및 실시설계를 할 예정이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