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연세대 특임교수(왼쪽부터), 백용호 이대 교수, 김덕중 화우 고문.
김종훈 연세대 특임교수(왼쪽부터), 백용호 이대 교수, 김덕중 화우 고문.
SK이노베이션, LG전자, 기아자동차 등 대기업이 이달 정기 주주총회에서 거물급 사외이사를 영입한다.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 한·중 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갈등으로 해외 사업 여건이 불확실해지면서 통상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뽑는 사례도 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오는 24일 주주총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수석대표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김종훈 연세대 특임교수를 신임 사외이사로 선출할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이사회 산하 사외이사 후보 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여러 인사 중 김 전 본부장이 가장 적임자라고 판단했다”며 “글로벌 파트너링(제휴) 등 해외 사업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외교통상 전문가로 글로벌 네트워크가 강한 김 전 본부장의 역할을 기대하고 사외이사로 선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올초 석유개발사업본부를 미국 휴스턴으로 옮기고 미국 다우케미칼의 고부가 접착수지(EAA) 사업을 4200억원에 인수하는 등 글로벌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국영 석유공사 시노펙과 석유화학공장을 합작 운영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통’으로 알려진 박승호 CEIBS(중국 유럽 국제비즈니스 스쿨) 교수를 주총에서 신임 사외이사로 뽑을 계획이다. 박 교수는 베이징삼성경제연구소장 출신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화장품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중국 사업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중국 사정에 정통한 박 교수를 사외이사로 낙점했다는 후문이다.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검찰청 등 이른바 사정기관 출신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기업의 구애를 받았다. LG전자는 공정거래위원장과 국세청장을 지낸 백용호 이화여대 교수를, 기아자동차는 국세청장 출신인 김덕중 법무법인 화우 고문을 각각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LG전자 관계자는 “백 교수는 세제, 공정거래 말고도 정책 관련 일을 많이 했고 학자로서 경험도 풍부하다”며 “회사 성장과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LG화학도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지낸 정동민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를 신임 사외이사로 뽑기로 했다.

한 기업에서 오랫동안 사외이사를 맡는 사례도 흔히 볼 수 있다. SK가스는 올해 주총에서 박봉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을 사외이사 후보로 재추천했다. 박 전 장관은 2011년부터 SK가스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도 기존 사외이사인 김준규 전 검찰총장(현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을 다시 사외이사로 선임하기로 했다.

사외이사 제도는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 도입됐다. 대기업 총수의 전횡을 견제하고 전문가적 시각에서 경영을 돕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수천만원대 연봉을 받으면서 경영진에 무조건 찬성하는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특히 사외이사 상당수가 ‘힘센 부처’ 출신으로 외부 로비 창구나 외부 비판을 막는 ‘바람막이’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최순실 사태’로 이사회 중심 경영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만큼 사외이사에 대한 외부 감시가 어느 때보다 강화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