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우리은행 민영화는 아직 진행 중
홍상수 감독의 영화 ‘오! 수정’에서는 하나의 상황을 남자와 여자 각각의 시선으로 두 번 보여준다. 재미있는 점은 남녀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일어난 일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 중심적인 사고와 판단은 어떻게 보면 인간 사회의 숙명과도 같다. 그래서 언제나 이해관계는 넝쿨처럼 얽힌다. 민영 은행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우리은행도 예외가 아니다. 한 배를 탔지만 경영진과 과점주주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예금보험공사는 2001년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우리은행 주인 찾아주기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지난해 주식을 쪼개 파는 방식으로 전환하고서야 보유 지분 51.04% 중 29.7%를 일곱 개 과점주주에 팔았다. 과점주주 가운데 한국투자증권 한화생명 IMM PE(프라이빗에쿼티) 키움증권 동양생명 등 다섯 곳은 사외이사를 추천해 우리은행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사외이사들의 신임을 받아 연임에 성공했다. 임기는 2년이다.

이후 물밑 갈등이 불거졌다. 사외이사들이 6개월마다 경영평가를 해야겠다고 밝히면서다. 곧 이 행장과 경영약정(MOU)을 맺는다. 경영을 잘하고 있는지 6개월마다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평가 항목에는 인사평가시스템 및 공정성, 비용 효율성, 주가 수준 등이 포함된다.

최고경영자(CEO)의 가장 강력한 권한은 인사권이다. 우리은행 사외이사들이 반기마다 인사평가시스템을 평가하겠다는 것은 결국 행장 인사권에 관여하겠다는 의미다. 상업·한일은행이 합쳐진 우리은행엔 아직도 두 은행 출신 간 알력이 남아 있어 조율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행장 리더십에 상처가 나는 것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비용 효율이나 주가 수준을 6개월마다 평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미래를 위한 투자가 주주 상황에선 낭비로 여겨질 수 있다. 주가가 오르거나 최소한 현상 유지라도 하려면 당장 실적이 뒷받침돼야 한다. 경영진으로선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물론 과점주주 처지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경영진 감시는 주주의 권리다. 거금을 투자한 만큼 수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증권·보험·펀드 등으로 구성된 과점주주들의 이해관계는 제각각이다. 언제까지 주주로 남아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일곱 곳의 과점주주 중 사외이사를 추천하지 않은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유진자산운용은 6월부터 지분을 매각할 수 있다. 사외이사를 추천한 다섯 곳도 1년 동안만 지분 매각이 제한된다.

금융위원회는 ‘성공적인 민영화’를 위해 행장 선임 등 우리은행 경영에 일절 간섭하지 않고 있다. ‘과점주주들의 반기별 경영 평가가 과거 예보의 경영평가 족쇄보다 더 우리은행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에도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의 경영권을 한 곳에 완전히 넘기는 걸 쉽게 결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지분을 쪼개 받은 과점주주들에게 무작정 우리은행의 장기 성장을 고민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무리다. 그래서 우리은행이 진정한 민영 은행이 되려면 확실한 주인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보가 가진 21%가량의 나머지 지분 매각을 서둘러야 한다.

서욱진 금융부 차장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