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선주의 쇼크' 멕시코를 가다] "국경 넘으면 인건비 20배 뛰는데"…'트럼프 으름장'에 웅크린 한국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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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미 수출기지' 마킬라도라 덮친 암운
미국 '35% 관세폭탄' 현실화 되면 900여개 기업들 대미 수출 타격
무관세 믿고 진출한 중소업체도 공장 설립 무기한 보류 '비상'
미국으로 이전하면 규제 훨씬 많아…"차라리 국경세 내겠다" 불만 토로
대부분 양국 눈치보며 '예의주시'
미국 '35% 관세폭탄' 현실화 되면 900여개 기업들 대미 수출 타격
무관세 믿고 진출한 중소업체도 공장 설립 무기한 보류 '비상'
미국으로 이전하면 규제 훨씬 많아…"차라리 국경세 내겠다" 불만 토로
대부분 양국 눈치보며 '예의주시'
멕시코 북서부 바하칼리포르니아노르테주(州)의 최북부 국경 도시 티후아나시(市). 이곳 삼성전자인터내셔널에서 근무하는 카트리나 김 변호사는 20여년째 국경 너머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출퇴근하고 있다. 잠은 샌디에이고에서 자고, 일은 티후아나에서 한다. 미국-멕시코 국경을 따라 자리한 다섯 개의 주요 ‘마킬라도라(임가공 수출자유지역)’에서 근무하는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 직원과 같은 일상이다.
멕시코 북동쪽 국경 도시 누에보레온주 레이노사에서 만난 배재철 LG전자 부장도 미국 맥캘런에 가족을 두고서 출퇴근 생활을 하고 있다. 현재의 국경이 미국과 멕시코를 갈라놓고 있지만 170년 전만 해도 국경 근처 미국 땅은 멕시코 영토였다. 티후아나 주민 절반은 지금도 샌디에이고로 건너가 현지 친척들과 주말을 보내고 자동차 기름도 넣는다.
◆‘최적의 입지’가 ‘최대 리스크’ 돼
멕시코가 미국 캐나다와 함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은 이후 미국과 국경을 맞댄 멕시코의 마킬라도라는 다국적 기업들의 북미 수출 전초기지 역할을 해왔다. 1993년 NAFTA 발효 이후 삼성을 비롯한 한국 기업 1800여개도 멕시코에 진출했다. 절반가량은 마킬라도라에 둥지를 틀고 제품을 만들어 미국과 캐나다로 무관세 수출을 해왔다.
이런 수출 전초기지가 날벼락을 맞았다. 지난해 11월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튿날인 지난 1월21일 대선 공약대로 NAFTA 재협상을 선언했다. NAFTA가 미국에 유리하게 재협상되지 않으면 멕시코산 수입품에 35% 관세(국경세)를 매기겠다고 했다.
NAFTA 재협상을 통해 미국 수출여건이 나빠지거나 국경세가 부과될 경우 멕시코 신규 진출이나 추가 투자가 어려워지고, 마킬라도라 등에 이미 진출해 있는 외국 기업들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
레이노사 상공회의소 사무국장인 마사 라모스 씨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이름을 대면 알 만한 한국의 대기업을 포함해 총 다섯 개 외국 기업이 공장 건설 계획을 유보해 놓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인근 몬테레이시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홍현표 한인회장은 “한국 본사에서 멕시코 공장 설립을 검토하다가 무기한 보류한 업체가 세 개 정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한국금형협동조합은 멕시코에 100억원을 투자해 금형단지를 세울 계획이었다. 멕시코는 연간 40억달러(2015년 기준) 이상 금형 제품을 수입하고 있다. 자국 생산량은 5%에 불과하다. 한국 금형 업체들이 놓치기 아까운 시장이다.
박순황 금형조합이사장(건우정공 대표)은 “멕시코 국경세 문제가 불거지면서 금형단지 조성 추진 계획을 일단 보류한 상태”라고 밝혔다. 계획을 완전히 폐기한 건 아니지만 앞으로 3개월 정도 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이행 여부를 지켜본다는 방침이다.
◆일부 “차라리 관세 무는 게 낫다”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산 제품에 국경세를 매기겠다고 한 것은 외국 기업들이 미국에 진출해 투자하거나, 미국으로 멕시코 공장을 옮겨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다.
기업들에는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멕시코 티후아나에서는 생산직 직원의 일당이 100~120페소(약 5~6달러)다.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시간당 0.6~0.8달러 선이다. 미국과의 국경에 인접한 멕시코 여섯 개 주의 상황이 모두 엇비슷하다.
반면 국경 너머 미국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멕시코주는 시간당 최저임금이 12~15달러 선이다. 노동 및 환경 관련 각종 규제와 기업 환경 등도 큰 차이가 있다. 한국 S사 관계자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감안하면 국경세든 뭐든 물고 멕시코에서 계속 수출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S사 관계자는 “미국 시장만 보고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호응해 미국으로 공장을 옮기면 멕시코와 한국에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의사결정 못하고 좌불안석만
한국 기업들은 일단 미국 시장 투자 검토, 수출처 다변화, 멕시코 현지 생산량 감축 등 가능한 시나리오를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다.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 일부 대기업은 미국 내 신규 및 추가 투자를 발표해 트럼프 대통령을 달랬지만 멕시코 현지 여건은 미국과 재협상하는 멕시코 정부의 입장과 맞물린다.
경쟁자인 다른 외국 기업들의 움직임까지 살펴야 한다. 한국 K사 관계자는 “섣불리 공장을 움직였다가는 한국 멕시코뿐 아니라 경쟁사들로부터 원망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 기업들은 의사 결정을 최대한 미루고 있다. 하윤호 주멕시코 한국대사관 상무관은 “미국의 멕시코 통상정책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날 때까지 당분간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티후아나·몬테레이·레이노사=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멕시코 북동쪽 국경 도시 누에보레온주 레이노사에서 만난 배재철 LG전자 부장도 미국 맥캘런에 가족을 두고서 출퇴근 생활을 하고 있다. 현재의 국경이 미국과 멕시코를 갈라놓고 있지만 170년 전만 해도 국경 근처 미국 땅은 멕시코 영토였다. 티후아나 주민 절반은 지금도 샌디에이고로 건너가 현지 친척들과 주말을 보내고 자동차 기름도 넣는다.
◆‘최적의 입지’가 ‘최대 리스크’ 돼
멕시코가 미국 캐나다와 함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은 이후 미국과 국경을 맞댄 멕시코의 마킬라도라는 다국적 기업들의 북미 수출 전초기지 역할을 해왔다. 1993년 NAFTA 발효 이후 삼성을 비롯한 한국 기업 1800여개도 멕시코에 진출했다. 절반가량은 마킬라도라에 둥지를 틀고 제품을 만들어 미국과 캐나다로 무관세 수출을 해왔다.
이런 수출 전초기지가 날벼락을 맞았다. 지난해 11월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튿날인 지난 1월21일 대선 공약대로 NAFTA 재협상을 선언했다. NAFTA가 미국에 유리하게 재협상되지 않으면 멕시코산 수입품에 35% 관세(국경세)를 매기겠다고 했다.
NAFTA 재협상을 통해 미국 수출여건이 나빠지거나 국경세가 부과될 경우 멕시코 신규 진출이나 추가 투자가 어려워지고, 마킬라도라 등에 이미 진출해 있는 외국 기업들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
레이노사 상공회의소 사무국장인 마사 라모스 씨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이름을 대면 알 만한 한국의 대기업을 포함해 총 다섯 개 외국 기업이 공장 건설 계획을 유보해 놓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인근 몬테레이시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홍현표 한인회장은 “한국 본사에서 멕시코 공장 설립을 검토하다가 무기한 보류한 업체가 세 개 정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한국금형협동조합은 멕시코에 100억원을 투자해 금형단지를 세울 계획이었다. 멕시코는 연간 40억달러(2015년 기준) 이상 금형 제품을 수입하고 있다. 자국 생산량은 5%에 불과하다. 한국 금형 업체들이 놓치기 아까운 시장이다.
박순황 금형조합이사장(건우정공 대표)은 “멕시코 국경세 문제가 불거지면서 금형단지 조성 추진 계획을 일단 보류한 상태”라고 밝혔다. 계획을 완전히 폐기한 건 아니지만 앞으로 3개월 정도 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이행 여부를 지켜본다는 방침이다.
◆일부 “차라리 관세 무는 게 낫다”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산 제품에 국경세를 매기겠다고 한 것은 외국 기업들이 미국에 진출해 투자하거나, 미국으로 멕시코 공장을 옮겨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다.
기업들에는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멕시코 티후아나에서는 생산직 직원의 일당이 100~120페소(약 5~6달러)다.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시간당 0.6~0.8달러 선이다. 미국과의 국경에 인접한 멕시코 여섯 개 주의 상황이 모두 엇비슷하다.
반면 국경 너머 미국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멕시코주는 시간당 최저임금이 12~15달러 선이다. 노동 및 환경 관련 각종 규제와 기업 환경 등도 큰 차이가 있다. 한국 S사 관계자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감안하면 국경세든 뭐든 물고 멕시코에서 계속 수출하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S사 관계자는 “미국 시장만 보고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호응해 미국으로 공장을 옮기면 멕시코와 한국에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의사결정 못하고 좌불안석만
한국 기업들은 일단 미국 시장 투자 검토, 수출처 다변화, 멕시코 현지 생산량 감축 등 가능한 시나리오를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다.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 일부 대기업은 미국 내 신규 및 추가 투자를 발표해 트럼프 대통령을 달랬지만 멕시코 현지 여건은 미국과 재협상하는 멕시코 정부의 입장과 맞물린다.
경쟁자인 다른 외국 기업들의 움직임까지 살펴야 한다. 한국 K사 관계자는 “섣불리 공장을 움직였다가는 한국 멕시코뿐 아니라 경쟁사들로부터 원망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 기업들은 의사 결정을 최대한 미루고 있다. 하윤호 주멕시코 한국대사관 상무관은 “미국의 멕시코 통상정책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날 때까지 당분간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티후아나·몬테레이·레이노사=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