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시장의 룰 바뀌었다…소비자가 '홍보맨' 되는 시대
요즘 4차 산업혁명이 어디에서나 화두다. 대선 후보들이 너나없이 내놓은 공약에서 빠지지 않는 이슈도 4차 산업혁명이다. 탄핵 정국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도 4차 산업혁명 관련 책을 열독했다고 하니 그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혹자는 3차 산업혁명의 연장으로서 별 실체 없는 개념이라고도 하지만 정보통신기술(ICT) 발달로 인한 자동화·지능화의 4차 산업혁명은 크든 작든 우리에게 닥쳐올 ‘정해진 미래’다. 중요한 것은 능동적으로 대비하지 않으면 낙오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산업 개편 예측, 리더십 면에서 변화와 대응책에 관련한 논의는 활발히 진행돼 왔다. 반면 마케팅과 관련한 이론적 논의는 드물었다는 점에서 《필립 코틀러의 마켓 4.0》은 의미가 있다.

먼저 코틀러의 견해부터 소개하자면 그는 ‘마켓 4.0’ 시대의 도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한다. 중심부가 기울고 주변부, 마이너, 신체제, 신흥시장이 새로 부상할 것이란 예측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개념인 초(超)연결성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평평해진 운동장’으로 게임의 규칙을 바꾼다는 것이 그의 관점이다.

먼저 마켓 4.0 지능과 관련한 퀴즈부터 풀어보자.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신개념 국가는 어디인가? 답은 16억5000만명의 ‘열혈 국민’을 확보하고 있는 페이스북이다. 세계지도상의 중국, 인도를 퍼뜩 떠올리며 망설였다면 아직 3차 산업혁명 시대 점·선·면의 평면 사고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 도래에 필요한 것은 ‘지리학, 인구학적 경계와 장벽을 넘는 디지털 지형의 개념과 대응’이다. 이것이 초연결의 기본 개념이다. 국경과 민족의 물리적 공간을 초월한 디지털 영토가 바로 4.0시대의 시장 영역이다.

마켓 4.0은 코틀러의 전작 《마켓 3.0》과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마켓 3.0의 키워드가 ‘가치’였다면 마켓 4.0은 ‘같이’다. 3.0에서 기업 비전과 핵심가치를 바탕으로 한 영(靈)적 마케팅을 중시했다면, 4.0에선 매력과 친밀감의 정(情)마케팅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요컨대 시장 권력이 생산자에서 완전히 소비자에게 이동했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브랜드와 고객의 관계는 이제 수평적이다. 고객은 동료이자 친구이며 수동적 목표물이 아니라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라며 다양한 사례를 들어 논증한다. 예전의 고객이 개별적 개인이라면 이제는 집단의 반영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망라한 광범위한 네트워크로 공동 연대해 행동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내용은 ‘고객 경로’ 부분이다. 지금까지 고객 경로에서 사용돼온 틀은 ‘4A’ 즉, 인지(aware)-태도(attitude)-행동(act)-반복행동(act again)이다. 저자는 이제 기업의 통제력과 영향력이 줄어들어 경로가 수정됐다며 ‘5A’를 제시한다. 인지(aware)-호감(appeal)-질문(ask)-행동(act)-옹호(advocate)로 질문과 옹호가 대체되고 추가된 것이다. 평판과 신뢰의 검증을 통과한다면 소비자는 단순한 팔로어를 넘어 팬, 더 나아가 강력한 옹호자가 된다. 바꿔 말하면 적극적 비판자가 될 수도 있다. 오늘날 마케터의 목표는 소비자를 단지 일회 구매의 소극적 인지자에서 적극적 옹호자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얼마 전 지인에게서 특정 업체 라면을 사 먹을 것을 적극 권유하는 문자메시지를 받은 게 떠올랐다. 그가 개인적 연고가 전혀 없는 그 기업의 홍보맨으로 나선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 기업이 오랜 세월을 통해 검증된 진정성과 정직성을 가졌기 때문에 도와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마켓 4.0은 연결성이 높아진 오늘날, 시장에서 경영자와 마케터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일러주는 안내서다. 아쉬운 대목은 마켓 4.0 시대의 장밋빛 전망만으로 점철돼 예측되는 부정적 측면과 그 대책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은 점이다. 그 해답은 어쩌면 코틀러가 책 첫머리에 적어놓은 구절에 함축돼 있는지도 모른다.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기를, 언제나 창의적으로 깨어 있기를.”

김성회 < CEO리더십 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