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한경 DB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한경 DB
[ 김봉구 기자 ]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뀌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일으킨 파장 탓이다. ‘반(反)이민 행정명령’은 곧바로 실현되었다. 법원이 제동을 걸면서 공은 연방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트럼프는 9일(현지시간) “SEE YOU IN COURT(법정에서 보자)”라는 트윗을 남겼다.

트럼프가 내건 또 하나의 문제적 공약이 있다.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는 것이다. 중남미계 히스패닉을 겨냥한 조치다. 이 또한 이뤄질까? ‘트럼프라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그는 이미 ‘미친 실행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인구학 분야 권위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사진)는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과격한 ‘말’과 달리 트럼프가 히스패닉을 쫓아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설마 했던 반이민 조치도 현실이 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반문에 “그것과는 다르다”고 했다. “히스패닉이 미국 인구의 8분의 1이나 차지하는 데다, 트럼프는 백인우월주의자 이전에 자본가이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트럼프는 무슬림을 희생양으로 삼는 대신 히스패닉은 쫓아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최혁 기자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트럼프는 무슬림을 희생양으로 삼는 대신 히스패닉은 쫓아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최혁 기자
무슨 의미일까. 그는 트럼프가 반이민 행정명령으로 입국금지 조치한 7개국을 일일이 거론했다. 이라크·시리아·이란·수단·리비아·소말리아·예멘. 모두 이슬람권 국가다. 중남미 국가는 빠져있다.

“지금 트럼프에게 필요한 건 ‘실적’이다. 그게 중동, 무슬림, IS(이슬람국가)였다. 다음 수순은 미국 내 불법 체류자를 쫓아내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때도 무슬림을 최우선 타깃으로 삼겠지. 그 다음은? 아마 중국인일 것이다. 최근 중국인 불법 이민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제조업 경쟁을 벌이는 미국 입장에서는 그쪽이 ‘실리’도 있다.”

조 교수는 “반면 히스패닉은 쫓아내기 어렵다. 인구 비중도 높을 뿐더러 질 좋은 저임금 노동력인 히스패닉을 고임금 백인 노동자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 “기업가인 트럼프가 이 점을 모를 리 없다”고 설명했다.

‘히스패닉과의 전면적 단절’로 받아들여지는 멕시코 국경장벽은 불법 이민이나 마약 범죄 등에 대한 차단 의지를 담은 것으로, 실제로는 트럼프가 무슬림과 히스패닉을 분리해 대응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트럼프가 막말 때문에 실체가 가려진 인물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언사가 거칠고 원색적이긴 하나 정책 기조는 일관성을 갖췄다는 것이다. 고립주의 정책이 대표적이다.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세계 경찰’이 되기 이전의 미국은,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 때부터 대체로 대외 불간섭 혹은 고립주의 전통을 유지했었다.

이와 관련해 조 교수는 “트럼프는 기존 질서나 가치관과 어긋나는 점 때문에 예측 불가능하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예측 가능한 인물”이라며 “분명한 것은 자신의 공약을 이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잘 살펴보면 어떤 ‘방향’이 보인다”고 귀띔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