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서울 방배동의 한 오래된 빌딩, ‘모던테이블(Modern Table)’이라 쓰인 팻말 없이는 이곳이 무용단 연습실 입구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을 장소에서 안무가 김재덕 씨(33)를 만났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라 무용수들 몸도 차갑게 굳어 있다”고 했다. 김씨는 모던테이블 소속 무용수들과 함께 굳어 있는 몸을 풀며, 까만 바닥과 회색 천장 사이에서 특유의 날카롭고도 부드러운 선을 드러내며 숨을 골랐다.

‘20대부터 해외에서 활동한 안무가이자 무용단장’이란 타이틀을 처음 봤을 때 느낀 낯섦과 거리감은 활짝 웃으며 수줍게 인사하는 첫인상과 함께 스러졌다. “전 그저 춤을 좋아했고, 춤이 좋아서 안무를 했고, 어쩌다 보니 다른 나라도 다니고 그랬을 뿐입니다. 오히려 절 그렇게 인정해 주는 게 제겐 낯선 일입니다. 저는 늘 하던 일을 계속한 것밖에 없으니까요.”

늦깎이로 무용계에 입문하다

김씨는 무용계에선 매우 늦은 나이인 열여섯 살에 무용을 시작했다. 인문계 고교에 진학했다가 안양예고 무용과 1학년에 편입했다. 그는 “1학년 때 발레, 2학년 때 한국무용, 3학년 때 현대무용을 배웠고 힙합 댄스 동아리에서 춤추기도 했다”며 “현대무용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왜 그렇게 춤 종류를 자주 바꿨느냐고요? 다른 건 아니고, 당시 선생님들이 제게 가장 잘 맞는 게 현대무용이라 생각한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요. 늦게 시작한 것치곤 참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안무를 시작한 계기는 단순했다. ‘자신만의 춤’을 추고 싶어서다. 그는 “사실 안무 공부를 정식으로 한 적은 없다”며 “한예종 3~4학년 때부터 창작발표회 때 안무한 작품을 꾸준히 냈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의 춤을 더 세밀하게 봤어요. 안무가의 시선에서 보는 무용 동작은 무용수의 시선과는 다르거든요. 무용수는 주어진 춤을 추면 되지만, 안무가는 춤뿐만 아니라 음악과 무대 구성, 무용수들과의 유대감 등을 고루 신경 써야 합니다.”

여러 장르의 춤을 오갔던 김씨의 경험은 안무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대표작인 ‘다크니스 품바’를 비롯해 ‘시나위’ ‘속도’ 등 10여편의 작품을 만들었다. 그의 작품에선 때론 발레가 보이고, 때론 살풀이춤이 보이고, 때론 서양 현대무용이 보인다.

“처음부터 춤동작을 생각하지는 않아요. ‘어떤 장르로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도 세우지 않습니다. 그냥 듣고 움직이며 떠올려요. 음악을 먼저 구상하고, 그 음악에 따른 춤동작을 자연스럽게 떠올린 뒤 그걸 즉시 정리하죠. 몸과 음악은 하나거든요.”

작품 속 음악도 모두 직접 작곡한다. 김씨는 “어머니가 재즈가수였는데 어릴 때부터 자주 여러 음악을 들려줬다”며 “이런 경험 역시 날 안무가로 이끈 밑바탕이 아니었나 싶다”고 했다. “제 음악을 딱히 뭐라 정의할 순 없어요. 춤과 함께하는 음악이니까요. 그래도 안무가로서 작곡을 할 수 있다는 게 제겐 큰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춤과 음악이 서로 어긋나면 그것도 골치 아프니까요.”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은 안무가

[人사이드 人터뷰] 국내 최초 남성무용단 '모던테이블' 이끄는 안무가 김재덕 씨
무대에서 장르의 틀을 깨고 ‘김재덕의 춤’을 만들고자 한 노력은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그는 2010년 스물여섯 살 때 싱가포르에 안무가로 초청됐다. 그 후 미국과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등 각국을 돌며 안무가 겸 대학 겸임교수로 활동했다. 2014년엔 LIG문화재단 협력 아티스트로 선정됐다.

그는 “해외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든 건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소통을 원활하게 할지 연구하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내 춤동작 단어는 모두 쉬운 단어들만 쓴다”고 설명했다. 그의 춤동작 이름 중엔 ‘공기’ ‘해바라기’ ‘물레방아’ ‘독수리’ 등 한 단어인 게 많다.

“각국을 돌다 보니 ‘세계에서 모두 통할 안무가의 언어’를 개발하는 게 얼마나 절실한지 체감했어요. 처음엔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제가 동작을 보여준 뒤 따라 하란 식으로 했어요. 그런데 다른 나라 무용수들에겐 그 방법이 통하지 않았어요. 마음에 와 닿지 않으니까 춤으로도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 가든 무용수들이 내 춤을 5분 만에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고민했어요.”

김씨는 2013년 국내 최초로 남성으로만 구성된 현대무용단 모던테이블을 창단했다. 안무와 작곡 관련 저작권비, 활동비 등을 모아 설립한 무용단이다. 현재 고정멤버 11명으로 활동 중이다. 평소 눈여겨보던 후배 무용수들을 찾아가 그 앞에서 직접 춤을 추고, 무용단에 들어와 달라 청하는 방식으로 멤버를 모집했다.

그는 “일부러 남성 무용수만 뽑았다”며 “소통할 때 성별 차이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는 춤의 속도와 강약 조절을 과감히 하는 편입니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남성 무용수들이 제 춤을 소화하기가 더 쉽더라고요. 그리고 남성들끼리 느낄 수 있는 직감도 무시할 수 없고요. 모든 걸 빠르게 진행하고 싶었거든요. 무용단 규모도 열 명 정도로 유지하고 싶어요. 그게 제겐 딱 적당하다고 보거든요.”

김씨는 “안무가 김재덕과 모던테이블 운영자 김재덕의 모습은 매우 다르다”며 “무용단 운영자로서, 자연인으로서의 김재덕으로 살 때 화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데 생각보다 쉽진 않다”고 털어놨다. “안무가와 무용가로 홀로 활동할 땐 제가 어떤 감정을 느끼든 상관없이 그대로 표출하면 됩니다. 하지만 조직을 운영할 땐 다르더라고요. 혼자가 아니기에 매사 조심스럽죠. 솔직히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이라서 힘들 때가 많지만, 이 역시 제가 극복해야 할 과제죠.”

“안무가는 세상 모든 걸 공부해야”

김씨는 “안무가는 세상 모든 걸 공부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인간의 모든 감정을 비(非)언어로 표현하기 위해선 심리에 대해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씨는 이를 위해 사서삼경과 고대 서양철학사를 공부했으며, 틈틈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위르겐 하버마스의 저서를 읽었다. “훌륭한 안무가가 되려면 인간을 공부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이것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술가가 목표인 친구들이 어릴 때부터 인문학과 어학 공부를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그는 “사람들이 안무가라기보다는 표현가라고 불러주는 날이 오길 원한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안무가라 하면 춤동작의 틀만 짜 주는 사람이라고 오해를 많이 합니다. 그런 인식을 바꾸고 싶어요. 세상의 모든 예술은 인문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걸 모르고 춤을 춘다면 결코 영혼을 나타낼 수 없죠. 그냥 말 그대로 화려한 몸동작에만 그치고 마는 겁니다.”

■ 안무가의 길

안무가는 말 그대로 ‘춤을 짜는 사람’이다. 무대와 영화, TV 등의 공연을 위해 춤을 고안하고, 무용수에게 춤을 가르치는 일을 맡는다. 춤뿐만 아니라 의상과 음악, 무대조명 등 공연에 필요한 거의 모든 절차를 총괄하는 역할도 한다. 때론 직접 공연에 출연해 춤을 추기도 한다.

안무가에겐 탁월한 예술감각과 소통 능력, 조직을 이끄는 책임감 등이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꼽힌다. 안무가가 춤을 잘 모르면 작품 구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소통을 잘하지 못하면 아무리 개인적인 능력이 뛰어나도 무용단원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없다. 홀로 작업하는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조직 차원에서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안무가가 필요한 부문은 매우 다양하다. 발레를 비롯한 서양 고전무용 및 한국무용, 현대무용 등 순수예술 분야를 비롯해 뮤지컬과 콘서트, TV 방송 등 상업예술 부문에서도 중요성을 점점 더 인정받고 있다. 특히 ‘대체 불가능한 콘텐츠 공급자’란 점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다.

국내에서 안무가 관련 교육 과정은 크게 정규와 사설 과정으로 나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안무 관련 정규 교육 과정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무용계 내부에서 나온다. 2년제와 4년제 대학 무용 관련 학과에서 안무를 공부하고, 관련 전문가를 사사하는 정규 과정을 밟을 수 있다. 사설 무용학원 또는 방송사 부설 아카데미 등에 개설된 과정을 통해 수업을 듣고, 경력을 쌓아 안무가가 될 수도 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