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한국이 따라가고 있다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지적했다. 고령화와 생산성 하락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일본처럼 장기 침체를 겪을 것이라는 경고다.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서비스업 경쟁력이 뒤처지는 위험신호도 과거 일본과 판박이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철저한 구조개혁과 자산거품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IMF는 강조했다.
IMF "한국, 구조조정 미루면 일본식 침체 올 것"
◆“생산성 추락 심상치 않다”

IMF는 최근 내놓은 ‘한국이 직면한 도전-일본의 경험에서 배우는 교훈’ 보고서에서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며 “20년 전의 일본을 매우 닮았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 일본은 주식·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터지면서 성장률이 곤두박질쳤다. 구조개혁과 부채 조정을 미루다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맞았고 기나긴 침체에 빠져들었다.

보고서는 한국이 20여년 시차를 두고 일본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생산가능인구(20~60세 기준) 비율은 올해 66.5%로 정점을 찍은 뒤 앞으로 20년 이내에 56%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은 생산가능인구 비율이 1995년 63%로 최고치였다가 2015년 56%로 떨어졌다. 보고서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내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노동생산성까지 떨어뜨린다”고 분석했다.

◆비정규직·서비스업 문제 판박이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1980년대 4%대에서 2000년대 1% 이하로 추락했다. 1991년 8%에 달하던 한국의 잠재성장률도 2015년 3% 아래로 떨어졌다고 보고서는 추정했다.

생산성 하락의 핵심 원인도 두 국가가 비슷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첫 번째다. 한국에서 임시직 근로자 비율은 2014년 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두 배다. 일본의 비정규직 비중도 1990년대 초반 20%대에서 최근 40% 가까이로 높아졌다.

낙후된 서비스업도 양국의 생산성을 떨어뜨렸다. 보고서는 “한국의 서비스업 규제는 주요 선진국보다 엄격하다”며 “규제 개혁을 통해 이 분야의 생산성을 끌어올릴 여지가 크다”고 분석했다.

◆자산 버블 터지지 않게 해야

보고서는 부채 감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본의 기업 부채는 1990년대 국내총생산(GDP)의 140%에 달했다. 정보기술(IT) 거품이 터진 2002~2003년에야 기업과 금융권의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그 결과 기업부채 비중은 2015년 100% 수준으로 하락했다.

한국의 기업부채는 현재 GDP의 100%로 과거 일본보다는 낮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조선 해운 등 산업 구조조정에 나서서 부실채권을 정리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조언했다.

일본에서 잃어버린 20년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자산 버블에도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한국은 거시건전성 정책을 도입해 부동산 가격 급등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며 “정부가 일관성 있는 정책을 이어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은 일본보다 재정 상황이 탄탄한 만큼 구조개혁을 강화할 여력이 있다고도 봤다.

인구 감소에 맞서는 것도 과제로 꼽혔다. 보고서는 고령화가 향후 5년간 물가상승률을 0.3%포인트 떨어뜨릴 것으로 분석했다. 저물가가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위축시켜 디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IMF는 “통화정책을 통해 경제주체들의 기대를 잘 유지하는 한편 구조개혁으로 디플레이션 압력을 해소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