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이미경 물러나면 좋겠다고 지시"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상근부회장이 “미르재단 설립 추진은 모두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동안 “기업이 선의로 출연금을 낸 것”이라는 취지로 말해왔지만 말을 바꾼 것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19일 최순실 씨와 안 전 수석의 공판을 열고 이 부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해 미르·K스포츠재단의 강제 모금 혐의에 대한 본격적인 퍼즐 맞추기를 시작했다.

이 부회장은 “재단 설립 추진은 안 전 수석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며 “300억원이라는 재단 출연금 규모, 출연기업도 모두 안 전 수석이 직접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청와대, 즉 박 대통령의 지시라고 인지한 것이 맞느냐는 검찰의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작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기업이 선의로 문화·체육재단에 출연금을 낸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지만 이날 법정에서는 청와대가 모금을 지시했다고 밝힌 것이다.

안 전 수석이 사실 은폐를 시도했다는 점도 밝혔다. 이 부회장에 따르면 안 전 수석은 언론 인터뷰와 국감 등에서 ‘허위진술’을 강요했다. 이 부회장은 “(작년 가을 두 재단에 대한) 언론 보도가 처음 나가기 전부터 안 전 수석이 ‘사건이 잘 마무리되도록 힘써달라’고 했고, 보도 이후에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낸 것처럼 견지해달라’며 허위진술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안 전 수석은 이 부회장이 마지막 검찰 조사를 며칠 앞둔 시점부터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자 보좌관을 시켜 전경련 직원에게 이 부회장에게 전할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자신의 지갑 속에 있던 메모지를 법정에서 공개했다. 이 부회장이 제출한 메모에는 “야당, 특검 전혀 걱정 안 하셔도 되고 새누리당 특검도 사실상 우리가 먼저 컨트롤하기 위한 거라 문제 없다. 모금 문제만 해결되면 전혀 문제없으니 고생하시겠지만 너무 걱정 말라”고 적혀 있었다.

앞서 열린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퇴진을 압박한 혐의로 기소된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사진)의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도 박 대통령의 지시 정황이 드러났다. 조 전 수석은 “박 대통령에게서 ‘이 부회장이 물러났으면 좋겠다’는 지시를 받고 손경식 회장을 만나거나 통화해 그 뜻을 전한 건 맞지만 협박할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