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재벌개혁을 외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재벌개혁을 주장하면 새누리당은 반대하는 것이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달라졌다. 새누리당 분당으로 국회가 4당 체제로 재편된 뒤로는 여야 모두가 재벌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새누리당에서 갈라져 나온 바른정당이 ‘따뜻한 보수’를 외치며 야당의 ‘경제민주화’에 동조하고 있는 데다 새누리당마저 바른정당과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야당이 추진하는 재벌개혁 법안 중 일부를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민주당은 정치·재벌·검찰·언론개혁 등 4대 개혁 법안을 1월과 2월 임시국회 중점 추진 법안으로 정했다. 재벌개혁 법안에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과 불공정거래 사건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포함됐다. 하도급거래 공정화법, 대규모 유통업 공정화법, 가맹사업거래 공정화법, 대리점거래 공정화법도 중점 법안으로 정했다.

국민의당은 경제·검찰·언론·정치·사회 등 5개 분야에 대해 24개 개혁과제를 선정,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재벌의 편법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쓰이는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고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상법을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국민연금법 개정도 추진하기로 했다. 조배숙 정책위원회 의장은 “24개 과제 중에서도 공정거래법과 상법 개정안은 재벌개혁 차원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른정당은 아직 구체적인 입법 추진 계획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소속 의원 상당수가 야당의 재벌개혁 법안에 공감하고 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대기업 계열사 간 출자 제한 강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새누리당도 지난주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여는 등 재벌개혁에 동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야당이 추진 중인 재벌개혁 법안 중 어떤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놓고 내부 검토에 들어갔다. 정치권에선 공정거래법 개정안 중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와 상법 개정안 중 전자투표제 도입 의무화 등은 여야 4당이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