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22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금명간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와 재계에선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으며 출석, 소환요구에도 성실히 응해 조사받아 온 이 부회장의 인신을 구속하려는 건 무리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 삼성의 경영과 해외 인수합병(M&A) 작업 등이 당장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검은 13일 아침 7시50분께 이 부회장에 대해 귀가조치했다. 뇌물 공여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12일 아침 9시반 소환한 뒤 22시간 넘게 조사한 뒤다. 특검 관계자는 “이 부회장에 대한 조사내용 검토 후 신병처리 방침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특검측은 이날 중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선 명백한 유죄의 증거를 확보했다면 구속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 제3자 뇌물죄의 경우 댓가성 여부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또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하기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과의 관계를 경제공동체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면 박 대통령을 겨냥해 미리 뇌물죄의 결론을 내려놓고 관련 기업들에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기식 수사를 한 것이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통상적으로 범죄 혐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려면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구속영장 청구의 대표적 근거는 혐의자가 증거의 인멸이나 도주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국내 재계 1위인 삼성을 이끄는 이 부회장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공히 알려진 사람으로 도주 우려가 없다. 출국금지 조치도 내려져 있는 상태다.

증거 인멸 가능성도 떨어진다. 삼성 관계자는 “특검은 세 번이나 진행된 검찰 압수수색의 결과물을 갖고 있다”면서 “세 번이나 수색을 했는데도 인멸할 증거가 또 있다고 판단했다면 그것은 사정당국의 수사가 부실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성실히 검찰과 특검, 국회 조사에 응해왔다. 최순실·안종범·정호성 등 핵심 3인방이 온갖 핑계를 대며 법치를 조롱하고 있을 때 이 부회장은 국회 청문회와 검찰, 특검의 출석 요구에 빠짐없이 나갔다.

이 부회장이 구속된다면 삼성이 쌓아온 브랜드 가치 추락 뿐 삼성의 경영과 진행중인 M&A 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당장 삼성전자가 작년 11월 80억달러에 사들이기로 한 미국의 전장전문기업 하만(Harman)의 인수도 차질이 우려된다. 하만의 주주들은 지난 3일 하만의 디네쉬 팔리월 CEO 등 이사진이 삼성전자와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신의성실의 의무를 위반했다며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에 집단소송을 냈다. 삼성은 올 11월까지 인수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지만, 일부 주주의 반대 의견이 제시된 상황에서 특검 수사가 부정적 영향으로 작용할까 걱정하고 있다. M&A를 주도해온 이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주주들을 만나 합병의 정당성을 설득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이 부회장은 출국금지에 구속까지 염려해야 하는 처지다.

작년 말에 이뤄졌어야 할 삼성그룹의 인사와 조직개편 작업도 지연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2008년에도 특검 수사를 받느라 5대 신수종사업 선정이 늦어져 태양광과 LED 분야에서 결국 경쟁력을 상실했다”면서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질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특검이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면 어느 때보다 법원의 판단이 중요하다. 법원은 구속영장 처리의 원칙인 도주, 증거인멸 우려 등에 대해 철저히 판단해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해야할 것이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