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세대 여성 벤처기업인 한경희 대표의 미래사이언스(옛 한경희생활과학)가 자금난으로 재무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1000만대 판매 신화를 쓴 스팀청소기 이후 별다른 히트상품을 만들어 내지 못한 데다 외부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은 탓이다. 한 대표는 “전자레인지를 대체하는 신개념 오븐 등 혁신 상품을 올해 안에 내놓고 회사를 정상화하겠다”고 말했다.

◆“영업은 정상적인 상황”

1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미래사이언스의 주채권은행인 기업은행은 최근 미래사이언스에 대한 공동관리 워크아웃 절차를 시작했다. 기업 구조조정 촉진법에 따른 것이다. 기업은행은 경영 정상화 방안을 검토하기 위한 실사에 들어갔다.

이에 앞서 작년 말 삼일회계법인은 미래사이언스에 대해 감사 ‘거절의견’을 냈다. 삼일회계법인 측은 “경영진 진술서와 재무제표 작성에 필요한 주요 자료를 제공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한 대표는 관련 내용을 적극 소명했다. 워크아웃에 대해 “이자율을 낮추기 위해 은행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것”이라며 “영업은 현재 정상적으로 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자를 못 내거나 영업을 접을 정도로 기업 상황이 나쁘지는 않다는 얘기다. 그는 “회계상 숫자는 좋지 않지만 실제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니다”고 했다. 재무구조가 악화된 이유도 “미국 법인에서 최근 발생한 대규모 대손상각 등이 빌미가 됐다”고 말했다. 감사인 의견거절과 관련해서도 그는 “작년 본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자료 제출 등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의도적인 자료 제출 거부가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신개념 오븐 내놓고 정상화 시도

한 대표는 “올해 완전히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고 회사를 정상화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는 “전자레인지를 대체하는 신개념 오븐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전자레인지처럼 빠르게 조리가 가능하면서도 전자파가 일절 나오지 않는 오븐을 이르면 올 상반기 안에 내놓겠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인테리어 사업도 곧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리모델링처럼 집을 뜯어 고치는 게 아니라 소액만 들여 수납과 정리, 인테리어 소품 등으로 집을 새단장하는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포장이사와 입주청소를 묶은 신개념 서비스도 구상 중이다. 지금은 이사하고 집을 비워준 뒤 입주 청소를 하지만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오전에 이삿짐 이동과 청소가 동시에 된다는 것이다. 한 대표는 “스팀청소기를 개발할 때처럼 일상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게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국내 1세대 여성 벤처인

한 대표는 국내 상징적인 여성 벤처기업인이다. 2002년 내놓은 스팀청소기는 이후 1000만대 넘게 팔렸다. 이후 스팀다리미 등으로 잇단 ‘대박’을 터뜨렸다. 2009년 매출은 1000억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음식물 처리기, 청소기, 전기 프라이팬 등 우후죽순 제품군을 늘렸지만 판매는 많지 않았다. 자세교정 의자와 책상 등 가구 사업에까지 뛰어들었지만 이내 접었다. ‘한경희’란 브랜드 파워도 판매 감소와 함께 힘을 잃어 갔다. 2014년 매출은 633억원으로 쪼그라들었고 7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업계에선 한 대표가 과거의 큰 성공으로 인해 조바심을 낸 게 자금난의 한 원인이 됐다고 지적한다. ‘대박 상품’에 연연하다 스팀청소기 등 기존 주력 제품에서 경쟁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아직 브랜드의 힘이 남아 있고 영업 네트워크도 살아있는 만큼 재기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