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들썩이면서 ‘물가연동국채(물가채) 랠리(가격 상승)’가 석 달째 이어지고 있다. 작년 11월25일 9770원으로 사상 최저점을 찍은 물가채(종목명 16-5·액면가 1만원) 가격은 지난달 말 1만원을 넘어선 뒤 5일 1만12원까지 뛰어올랐다. 채권시장에서는 ‘추가 상승 여력이 아직도 있다’는 의견과 ‘이미 꼭지(고점)를 쳤다’는 판단이 맞서고 있다.
물가채, 석 달째 '랠리'…"더 오른다" vs "꼭지"
물가 상승률 밑도는 BEI

물가채 시세가 적정한지 판단할 때 눈여겨봐야 할 지표는 BEI(break-even inflation)다. 국고채 금리에서 물가채 금리를 뺀 값으로, 시장에서 예상하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기대 인플레이션율)을 나타낸다. 바꿔 말하면 국고채 금리는 물가채 금리와 기대 인플레이션율의 합으로 결정된다는 얘기다. 정영록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실제 물가 상승률이 시장 예상보다 높으면 BEI가 커지면서 물가채 금리가 내려가게(가격이 오르게) 된다”고 말했다. 작년 1월14일 0.375%포인트로 연중 최저치를 기록한 BEI는 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가 확산하면서 5일 1.004%포인트까지 치솟았다.

물가채 가격이 지금보다 더 오를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BEI가 여전히 물가 상승률을 밑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재작년 12월보다 1.3% 올랐다. 작년 5~8월 넉 달 연속 0%대 상승률을 보였으나 9월에 1.3%로 뛰었다. 10~11월엔 1.5%였다. 박종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물가 상승률이 1.5%를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적정 BEI는 지금보다 0.2%포인트 높은 1.2%포인트”라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국제 유가와 곡물 가격이 오르면서 물가 상승률이 작년(연간 1%)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BEI와 물가채 가격 상승 여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의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1.6%다.

금리 상승기엔 물가채도 타격

올해 미국의 금리 인상이 가속화하면서 국내 시장 금리가 상승세를 타면 물가채도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이란 전망도 많다.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은 현재 연 2.0%대인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올해 2.3%대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윤여삼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채권이 전반적으로 약세를 띠는 장에서 물가채 가격만 올랐던 적은 별로 없다”고 했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2007년 이후 물가채와 10년 만기 국고채 간 수익률 상관계수는 0.77(최대값 1)이다. 물가채 금리와 소비자물가 상승률 간 상관계수(0.46)보다 월등히 높다.

국고채에 비해 거래량이 많지 않다는 단점도 있다. 시장 금리가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국면에선 거래 자체가 어려워져 ‘비싸게 사고 싸게 팔아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윤 연구원은 “환금성이 낮다는 점과 시장 금리 상승에 대한 우려를 감안하면 물가채 가격은 지금이 고점”이라고 말했다.

박태근 삼성증권 연구원은 “물가채는 금리와 물가 변동성이 동시에 가격에 반영되는 중위험·중수익 상품인 만큼 주력 투자 자산보단 보완 자산으로 활용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 물가연동국채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의 일종으로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만큼 원금이 늘어난다. 예를 들어 표면금리가 연 10%인 1000만원어치 물가채를 산 뒤 물가가 3% 오르면 원금이 1030만원으로 조정되고, 여기에 103만원(1030만원×10%)의 이자가 지급되는 식이다. 만기는 10년이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