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개혁으로 국민 여러분이 겪은 고초는 여러 세대에 걸쳐 귀감이 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인도의 밝은 미래를 위해 토대를 닦고 있습니다.”
'검은돈' 잡으려다…제조업 얼어붙은 인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달 31일 TV 연설에서 고난을 함께 이겨낼 것을 촉구했다. 그는 “새 돈을 받기 위해 여러분이 몇 시간씩 줄을 선 것을 알고 있다”며 “하지만 부패와 ‘검은돈’을 척결하기 위해 지금 뒤로 물러서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자신의 화폐개혁을 마하트마 간디의 독립운동에 비유하기도 했다.

2014년 집권한 모디 총리는 지난해 저돌적인 개혁으로 호평을 받아왔다. 작년 5월 파산법을 개정해 은행 부실채권 처리에 돌파구를 마련했고, 8월엔 주(州)마다 다른 부가가치세 제도를 하나로 통합해 기업 활동의 최대 걸림돌을 걷어냈다. 하지만 11월 시행한 화폐개혁으로 모디 총리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3일 보도했다.

◆화폐개혁에 제조업 경기 위축

모디 총리는 11월8일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고액권인 500루피(약 8800원)와 1000루피(약 1만7600원) 지폐 유통이 즉각 중단됐다. 기업을 포함한 모든 인도 국민은 지난달 30일까지 기존에 사용되던 구권을 은행 계좌에 입금하거나 신권으로 교환해야 했다.

인도 정부는 25만루피 이상의 구권을 은행에 입금하거나 신권으로 교환하면 탈세 여부를 조사하고, 자금 출처가 해명되지 않으면 최대 95.5%까지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인도 국내총생산(GDP)의 23%에 이르는 지하경제를 뿌리 뽑고 세수를 늘리려는 조치다.

취지는 좋았지만 준비가 미비했던 것이 문제다. 사람들에게 나눠줄 500루피와 새로 도입된 2000루피 신권이 충분치 않았다.

신용카드가 없는 중산층과 빈곤층의 타격이 컸다. 쓸 수 있는 현금이 없어 소비가 크게 줄었다. 이스트델리에서 인력거를 끄는 나젠더 티와리는 “하루 수입이 1000루피에서 600루피로 줄었다”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공장과 농장도 일손을 멈췄다. 물건을 팔기 어렵고 원료를 사오기도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달 2일 발표된 작년 12월 닛케이마킷 인도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6으로 2015년 12월 49.1을 기록한 이후 1년 만에 처음 기준선인 50 아래로 떨어졌다. PMI는 50을 넘으면 경기 확장, 50 미만은 경기 위축을 의미한다. 폴리안나 드리마 IHS마킷 애널리스트는 “현금 부족으로 기업이 구매를 취소하고 고용을 줄이면서 제조업 경기가 위축됐다”고 설명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인도 경제성장률 전망을 7.9%에서 6.8%로, 도이치뱅크는 7.5%에서 6.5%로 하향 조정했다.

◆모디 지지도, 부패 청산에 달려

모디 총리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아직 굳건하다. 작년 11월22일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3% 이상이 부패 청산을 위해 이번 화폐개혁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지난달 찬디가르 시의회 선거에서 모디 총리가 속한 인도국민당(BJP)과 연정파트너는 26석 중 21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뒀다. 하지만 부패 청산 효과가 실망스러우면 모디 총리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FT는 “구권 입금액에 제한을 둔 정부 규제를 피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며 “일부 부자는 차명 계좌로 구권을 입금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모디 총리는 이번 화폐개혁을 통해 전자거래 활성화를 꾀하고 있지만 결제 인프라가 뒤떨어지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인도는 1978년에도 화폐개혁을 했지만 신권으로 다시 지하경제가 형성되면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