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저주’가 ‘축복’이 돼 버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멕시코가 지난달 2억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며 지난 3월 이후 8개월 만에 적자에서 벗어났다고 26일 보도했다. 제조업 수출이 13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흑자전환을 이뤄냈다. 블룸버그통신도 9억달러 적자를 예상한 전망치를 벗어난 ‘이변’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저주'의 역설…멕시코 '깜짝 무역흑자'
◆美 대선 이후 10% 떨어진 페소화

일등공신은 역설적이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였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검토 등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공약을 내건 트럼프의 당선으로 페소화 가치가 폭락한 게 멕시코에 전화위복이 됐다.

지난달 8일 미국 대선 이후 페소화 가치는 달러당 20페소가 무너지며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선 이후에만 10%를 포함해 올 들어 낙폭이 17%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한 영국 파운드화와 비슷한 수준으로 하락했다.

블룸버그는 페소화 가치 하락에 따른 멕시코 제조업체의 수출가격 경쟁력 향상이 두 자릿수의 수출 증가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멕시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1% 증가한 344억7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수입은 342억7000만달러로 5.1% 증가해 수출이 수입보다 2억달러 많았다. 지난해 11월에는 15억7000만달러 적자였다.

WSJ는 유가 상승으로 석유 수출이 6.8%, 농산물 수출도 33.3% 늘어났지만 제조업 수출 증가율이 10.3%로 2015년 10월 이후 최대였다고 분석했다. 석유를 제외한 무역흑자 규모는 14억달러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멕시코의 무역수지가 더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시장에 수출하는 다른 국가 제조업체의 여건이 단기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페소화 약세의 이점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11월 ‘반짝 흑자’에도 불구하고 멕시코는 올 들어 누적 기준으로 131억6000만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NAFTA, 미국에 재앙 아니다”

트럼프 당선자는 선거 기간에 “NAFTA는 최악의 무역협정이자 재앙”이라고 말했지만 이와 다른 시각이 많다. 미국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미국이 멕시코와의 교역에서 연간 약 600억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지만 미국 역시 많은 이익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멕시코는 브라질에 이어 중남미 2위 경제대국이다. 미국으로부터 유럽연합(EU)과 비슷한 규모의 제품을 수입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두 배에 달한다. 반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멕시코가 중국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미국의 한 주류업체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가 멕시코산 테킬라에 관세를 부과하고, 멕시코 정부가 미국산 수입 위스키에 보복관세를 매긴다면 양측 모두 손해를 본다”며 “이는 고용과 무관한 비즈니스”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UBS의 분석을 인용해 자동차를 제외하면 오히려 멕시코가 미국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적자 규모가 2013년 470억달러에서 2014년 520억달러, 지난해 580억달러로 매년 늘어나는 것 같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다르다는 설명이다.

지난달 멕시코의 제조업부문 미국 수출은 전체의 83%를 차지했다. 자동차 수출은 8% 증가했다. 멕시코의 공산품 수출 중 40%를 자동차가 차지하고 있지만 멕시코가 수입하는 자동차 부품 5개 중 2개는 미국산이다.

FT는 멕시코가 유치한 외국인직접투자(FDI)의 40%는 미국과 인접한 북쪽 국경지역에 몰려 있고, 양국 기업의 공급망이 긴밀히 통합돼 있기 때문에 서로 관세를 부과할 경우 모두를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크 페리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원은 “무역은 구매자와 판매자에게 상호 이익이 되는 ‘윈윈’ 거래”라며 “NAFTA를 탈퇴하는 것은 멕시코와 캐나다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경제적 재앙”이라고 말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