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는 모든 업종에서 한계에 맞닥뜨릴 중소기업이 늘어날 겁니다.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을 도우면서 은행 건전성도 지키는 힘든 과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김도진 차기 기업은행장 내정자(57)는 25일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에서 한 인터뷰에서 “내년 최우선 경영과제는 생존”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 내정자는 지난 23일 금융위원회의 제청을 받아 권선주 행장 후임으로 내정됐다. 26일께 청와대 임명을 받으면 오는 28일 기업은행장으로 공식 취임할 예정이다.

김도진 기업은행장 내정자가 25일 취임 이후 경영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기업은행 제공
김도진 기업은행장 내정자가 25일 취임 이후 경영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기업은행 제공
김 내정자는 내년 기업은행 경영의 키워드를 ‘부실’과 ‘리스크 관리’로 꼽았다. 그는 “내년에는 조선 해운은 말할 것도 없고 건설 철강 등 모든 업종의 불황이 깊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가 마주한 기업은행의 경영 상황도 녹록지 않다. 기업은행은 3분기 연체율이 2분기(0.55%)보다 0.15%포인트 상승한 0.7%를 기록했고, ‘고정 이하’ 부실여신 비율도 1.35%에서 1.42%로 높아지는 등 여신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부실 중소기업이 그만큼 많이 늘었다는 의미다. 김 내정자는 “중소기업이 살아나야 기업은행도 살 수 있다”며 “내년에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겠지만 살릴 수 있는 기업은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 올 때 우산을 뺏는 경영은 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그는 “우리(기업은행)는 기업이 적자를 내고 신용도가 낮아진다고 해서 선제적으로 여신을 회수하는 시중은행과는 다르다”며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신용카드 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고비 때마다 중소기업을 지켰다”고 말했다.

김 내정자는 핀테크(금융+기술)와 해외시장 공략 속도를 높이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내년 인터넷·모바일 등 비(非)대면 상품 판매 비중을 40%로 높이고 해외 이익 비중을 20%로 확대하는 등의 목표를 제시했다. 그는 “지금껏 기업은행은 ‘돌다리도 두들겨본 뒤 건넌다’는 자세로 신사업을 추진했다”며 “앞으로는 과감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은행은 김 내정자가 공식 취임하면 조준희 전 행장, 권선주 행장에 이어 세 번 연속 내부 출신 행장을 맞는다. 이번 행장 내정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반대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에 대해 김 내정자는 내부 결속을 다지겠다는 뜻도 밝혔다. 금융위의 임명제청 소식이 전해진 23일 노조 사무실을 찾아 “지난 일은 잊고 함께 머리를 맞대자”고 협조를 당부했다. 김 내정자는 “직원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경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