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조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온몸을 부딪쳐 일했습니다. 검찰이 광범위한 조사로 관련자들의 진술을 퍼즐 맞추듯이 해서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

“수사와 관련된 사실관계는 강 전 행장도 모두 인정한 부분입니다. 방어권 보장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검사)

2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508호실. 형사32부(부장판사 남성민) 심리로 열린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71)의 첫 공판준비기일에서는 이같이 상반된 주장이 오갔다. 하늘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나온 강 전 행장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강하게 부인해 향후 치열한 법적 공방을 예고했다.

강 전 행장은 2011∼2012년 당시 대우조선해양에 압력을 넣어 지인이 운영하던 바이오에탄올 업체 ‘바이올시스템즈’에 44억원을 투자하도록 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으로 기소됐다.

검찰은 이날 강 전 행장의 세 가지 혐의(직권남용, 제3자 뇌물수수, 배임)를 부각시켰다. 검찰 측은 “강 전 행장은 지인이 운영하는 바이올시스템즈가 국책사업 관련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탈락했는데도 공적인 권한을 이용해 이를 번복시켰다”고 했다. 이어 “실무진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대우조선해양에 압력을 넣어 44억원을 투자하게 했다”며 “이는 제3자 뇌물죄와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 밖에도 원유철 새누리당 의원의 청탁을 받고 부실기업에 특혜성 대출을 지시한 혐의, 고교 동창인 임우근 회장(68·불구속기소)이 경영하는 한성기업에서 수 억원대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강 전 행장을 추가기소했다.

강 전 행장의 변호인은 “사실관계와 법리적인 해석 부분에서 의견이 다르다”며 “기본적으로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바이올시스템즈 투자와 관련해 “공식적인 회의에서 의견을 낸 것이지 비공식적으로 직권을 남용한 게 아니다”고 했다. 이에 검찰은 “회의석상에서 한 발언이 아니라 대우조선 관계자에게 개인적으로 전달한 내용이기 때문에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또 강 전 행장의 변호인은 “지인이 운영하는 업체에 투자하게 한 것이 배임이라는 게 검찰 공소사실의 취지인데, 강 전 행장의 지인은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며 “이는 법리에 문제가 많은 공소 제기”라고 주장했다. 지인이 대우조선으로부터 투자금을 받아낸 부분에 사기죄가 적용됐는데 강 전 행장에게 배임죄가 적용된 것은 법리적으로 모순된다는 설명이다. 사기죄는 피해자를 속여 돈을 받아내는 행위인데, 지인이 대우조선을 속여 돈을 받아냈다고 기소하면서 강 전 행장에게는 임무에 위배해 투자하게 한 혐의(배임)로 기소한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변호인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검찰은 “비슷한 사례에서 한 명의 피해자를 두고 사기죄와 배임죄가 함께 성립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며 오히려 변호인을 향해 “어떤 법리적인 문제가 있다는 건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어 “사기 대출 사건에서 대출해준 금융기관 직원은 배임, 대출자는 사기 혐의로 유죄가 인정되는 것과 동일한 구조”라며 “(변호인 주장에 대비해) 사례 분석을 해 뒀는데, 추가로 의견서를 내서 설명하겠다”고 받아 쳤다.

강 전 행장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구치소에서 보름 이상 있으면서 벽을 보며 ‘통곡하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그 외에는 어떤 말로도 (심정을) 표현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이어 “공직에 있는 동안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고 부정한 돈을 받지 않았다. 지금 사는 아파트 외에는 별다른 재산도 없고 주식이나 골프장 회원권도 갖지 못하고 살아왔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강 전 행장의 다음 재판은 내년 1월12일 오후 4시에 열린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