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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너리즘'에 빠진 방송 콘텐츠…암흑기냐, 과도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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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경 기자의 컬처 insight
    '매너리즘'에 빠진 방송 콘텐츠…암흑기냐, 과도기냐
    '매너리즘'에 빠진 방송 콘텐츠…암흑기냐, 과도기냐
    타로 카드도 나오고 귀신도 등장한다. 유명 연예인을 속이기 위해서다. 그는 속고 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스꽝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지난 4일 첫 방송을 내보낸 MBC 예능 프로그램 ‘은밀하게 위대하게’(사진)다. 새로 시작한 프로그램이지만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1991~1992년 큰 인기를 얻었던 개그맨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와 같은 포맷이다. 25년 전의 콘텐츠가 재탄생한 것이다.

    그새 사람들의 생각도, 문화도 바뀌었지만 프로그램 내용은 같다. ‘기존의 몰래카메라와 달리 젊고 유쾌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던 기획 의도도 찾아보기 힘들다. ‘은밀함도, 위대함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시시각각 트렌드가 급변하는 시대지만 콘텐츠 시장은 정체하고 있다는 사람들이 많다. 온라인과 모바일 기술 발전에 따라 웹 드라마 등 새로운 형식을 갖춘 콘텐츠는 늘고 있다. 하지만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TV에선 ‘콘텐츠 암흑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과거 성공한 콘텐츠 형식을 베끼거나 특정 인기 콘텐츠가 나오면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쏟아진다.

    최근에 나온 TV 프로그램들을 떠올려보자.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먹방’ ‘쿡방’이다. ‘냉장고를 부탁해’ ‘백종원의 3대 천왕’ ‘먹고 자고 먹고’ 등 음식 관련 프로그램은 어느 채널, 어느 시간대에나 볼 수 있다. 이 포맷은 2008년 아프리카TV 등을 통해 개인 먹방이 화제가 되면서부터 유행했다. 8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육아, 가상 결혼을 다룬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2014년 큰 인기를 얻은 ‘아빠 어디가’는 ‘슈퍼맨이 돌아왔다’ ‘엄마가 뭐길래’ 등으로 이어졌다. 가상 결혼도 2012년부터 방영된 ‘우리 결혼했어요’를 시작으로 ‘남남북녀’ ‘최고의 사랑’ 등에서 이뤄지고 있다.

    격변의 시기에 나타난 정체 현상은 참신한 콘텐츠에 대한 갈증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이를 창작자 탓으로만 돌릴 순 없다. 콘텐츠는 시대와 따로 떼어놓고 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기술 발전으로 표현 수단이 크게 늘었지만 표현의 자유는 줄었다. 자유로운 상상력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의 거대한 장벽 앞에 부딪히고 말았다. 분출돼야 하는 창의성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억눌렸다. 이런 분위기가 콘텐츠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암흑기적 현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과거로 돌아가보자. 1970년대에는 ‘가요 규제 조치’가 있었다. 작품을 선별해 금지한 게 아니었다. 특정 가수와 작곡가의 활동을 전면 금지했다. 1970년대판 ‘블랙리스트’였다. 팝송에도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밥 딜런의 사랑 노래조차도 못 듣게 했다. 문화에 세운 커다란 장벽은 콘텐츠의 시간을 멈추게 했다. 한류가 태동하기 시작한 1990년대에 가서야 그 시계가 다시 째깍거리기 시작했다.

    최근의 정체 현상을 부정적으로만 평가하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암흑기는 그냥 암흑기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 피울 싹을 땅 아래 품고 있다고 주장한다. 역사는 늘 그랬다. 중세는 르네상스를 품고 있었다. 네덜란드 철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이를 ‘중세의 가을’이라고 표현했다. 손가락질 받았던 ‘마니에리스모’도 마찬가지다.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거장들의 방식을 고스란히 따라한 유사 작품이 쏟아졌다. 인체의 이상적 비례론을 무작정 따라하다 보니 그림엔 12등신의 사람이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는 형(形)의 시대(르네상스)에서 색(色)의 시대(바로크)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르네상스 예술의 정형화된 공간적 획일성을 해체하고, 제각각 다른 가치를 화폭에 담아내는 작업들이 이뤄졌다. 나아가 마니에리스모는 현대 초현실주의의 발판이 됐다는 평가도 받는다.

    마니에리스모에서 파생된 단어가 ‘매너리즘’이다. 지금은 창작자도, 시청자도 무기력한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가치를 담은 콘텐츠를 제작한다면 이 매너리즘도 곧 새로운 싹을 틔울 것이다. 미술사에서 마니에리스모가 그랬듯.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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