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공연·경기 예매 1분도 안돼 매진 "매크로족 날뛰는데 처벌법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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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한 번에 티켓 수백장 사들여 콜드플레이 공연·KS 때도 등장
암표값 올려 문화·스포츠시장 교란
수강신청·게임 등에도 악용…전문 프로그램 50만원선에 거래
"미국선 1년 이하 징역형인데 우리나라는 불법 규정 없어"
암표값 올려 문화·스포츠시장 교란
수강신청·게임 등에도 악용…전문 프로그램 50만원선에 거래
"미국선 1년 이하 징역형인데 우리나라는 불법 규정 없어"
지난달 세계적인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첫 내한 공연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팬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내 실망이나 좌절을 맛봐야 했다. 열혈 팬 대부분이 공연 예매에 실패한 탓이다. 티켓 4만5000장은 지난달 23~24일 모두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1분도 되지 않아 동났다. 직장인 최모씨(31)도 “주변에서 예매에 성공한 사람을 한 명도 못 봤다”며 “매크로(자동명령프로그램)를 쓰는 전문 암표상들이 이번에도 대량 매집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콜드플레이 암표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정가 15만4000원짜리 티켓은 중고티켓 매매사이트에서 50만~6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전문 암표상은 1초 안에 공연 날짜와 시간, 좌석 선택, 결제 정보를 입력하는 ‘매크로 코드’를 이용해 쉽게 좌석을 선점하고 있다. 지난 8월 아이돌그룹 샤이니 콘서트 티켓 오픈 때도 한 명이 320장의 티켓을 선점한 뒤 암표 거래를 해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같이 시장을 교란하는 매크로는 공연뿐 아니라 프로야구 한국시리즈(KS) 예매, 수강신청, 휴양림 예약, 게임 등급 올리기, 주식 빠른매매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매크로를 사용하는 게 현행법상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맞춤형 매크로’ 30만~50만원 선
매크로는 누구나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검색하면 ‘인터파크 예스24 티켓팅 매크로 판매합니다’ ‘쉽게 만드는 휴양림 예약 매크로 가르쳐드립니다’ 같은 게시물이 뜬다. 대학 수강신청이나 주식시장 모니터링 등 매크로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구체적인 사용법을 올려놓고 매크로를 판매하는 블로그도 수십 개다. 이 같은 매크로 프로그램의 가격은 1만~10만원 수준이다.
‘맞춤형 매크로’를 전문적으로 제작·판매하는 곳도 있다. 홈페이지의 보안 수준이나 프로그래밍 난이도에 따라 30만~50만원 선에서 거래된다. 매크로 제작자 이모씨는 “보통 델파이 같은 프로그래밍 소프트웨어로 만들고 1시간 정도면 맞춤형 매크로를 제작할 수 있다”며 “한 달에 3~5개가량 의뢰가 들어와 150만원 정도 수입을 올린다”고 귀띔했다.
관련 기관들은 매크로 피해를 막기 위해 새로운 보안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예스24는 부정한 예매 진행을 감지하고 차단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매크로 이용 의심자의 티켓을 강제 취소하고 있다. 서울대도 학생들의 매크로 사용을 막기 위해 2012년부터 수강신청 시 두 자리의 자동생성번호를 입력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적용 중이다.
하지만 보안 시스템을 무력화하는 매크로가 즉각 나오고 있다. 티켓팅업체가 매크로 이용을 감지하고 취소시킨 예약 자리를 노리고 예매하는 ‘취케팅(취소+티켓팅) 매크로’도 나왔다. 서울대 관계자는 “자동번호생성 시스템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매크로도 개발돼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선 매크로 이용자 경범죄 처벌
매크로 피해 사례가 잇따르고 있지만 제재할 방법은 별로 없다. 매크로 사용 자체가 불법이 아니어서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은 타인의 컴퓨터에 악성코드를 설치하거나 전달하는 경우만 규정해 처벌하고 있다. 자신의 컴퓨터에 설치하는 매크로는 정보통신망법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
암표 판매도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경범죄처벌법의 암표 판매 조항은 현장 판매만 불법으로 규정한다. 온라인에서 웃돈을 얹어 티켓을 판매하는 행위는 단속 대상이 아니라는 게 법조계 해석이다.
공연업계는 피해가 계속되자 업무방해에 해당한다며 적극 대응에 나섰다. 예스24는 지난 8월 매크로를 이용해 샤이니 등 아이돌 콘서트 티켓을 다량으로 상습 구매한 조모씨 등 6명을 영업방해혐의로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형법상 업무방해죄가 매크로 이용자에게 적용된 선례는 아직 없다.
경찰 관계자는 “매크로로 서버가 마비돼 회사가 구체적인 금전적 손실을 입거나 해당 매크로가 불법의 명령을 담았다는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선 매크로를 사용해 티켓을 매매하는 행위를 경범죄로 규정하는 추세다. 지난달 28일 미국 뉴욕주에선 매크로 프로그램인 ‘티켓봇(ticket bot)’을 이용해 콘서트나 스포츠 경기 입장권을 예매하는 행위를 경범죄로 분류해 최대 1000달러의 벌금이나 1년 이하 징역을 선고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매크로가 공정 경쟁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인식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국내에선 매크로 사용을 처벌할 명확한 규정이 없다 보니 편법적 행위가 방치되고 있다”며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선량한 소비자의 금전적 피해가 큰 만큼 관련 법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매크로(자동명령 프로그램)
매크로 명령어(macro instruction)의 줄임말. 마우스나 키보드로 여러 번 순서대로 해야 할 동작을 한 번의 클릭으로 자동 실행시키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사용자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개발됐지만 티켓 예매 등에서 편법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황정환/성수영 기자 jung@hankyung.com
전문 암표상은 1초 안에 공연 날짜와 시간, 좌석 선택, 결제 정보를 입력하는 ‘매크로 코드’를 이용해 쉽게 좌석을 선점하고 있다. 지난 8월 아이돌그룹 샤이니 콘서트 티켓 오픈 때도 한 명이 320장의 티켓을 선점한 뒤 암표 거래를 해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같이 시장을 교란하는 매크로는 공연뿐 아니라 프로야구 한국시리즈(KS) 예매, 수강신청, 휴양림 예약, 게임 등급 올리기, 주식 빠른매매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매크로를 사용하는 게 현행법상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맞춤형 매크로’ 30만~50만원 선
매크로는 누구나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검색하면 ‘인터파크 예스24 티켓팅 매크로 판매합니다’ ‘쉽게 만드는 휴양림 예약 매크로 가르쳐드립니다’ 같은 게시물이 뜬다. 대학 수강신청이나 주식시장 모니터링 등 매크로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구체적인 사용법을 올려놓고 매크로를 판매하는 블로그도 수십 개다. 이 같은 매크로 프로그램의 가격은 1만~10만원 수준이다.
‘맞춤형 매크로’를 전문적으로 제작·판매하는 곳도 있다. 홈페이지의 보안 수준이나 프로그래밍 난이도에 따라 30만~50만원 선에서 거래된다. 매크로 제작자 이모씨는 “보통 델파이 같은 프로그래밍 소프트웨어로 만들고 1시간 정도면 맞춤형 매크로를 제작할 수 있다”며 “한 달에 3~5개가량 의뢰가 들어와 150만원 정도 수입을 올린다”고 귀띔했다.
관련 기관들은 매크로 피해를 막기 위해 새로운 보안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예스24는 부정한 예매 진행을 감지하고 차단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매크로 이용 의심자의 티켓을 강제 취소하고 있다. 서울대도 학생들의 매크로 사용을 막기 위해 2012년부터 수강신청 시 두 자리의 자동생성번호를 입력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적용 중이다.
하지만 보안 시스템을 무력화하는 매크로가 즉각 나오고 있다. 티켓팅업체가 매크로 이용을 감지하고 취소시킨 예약 자리를 노리고 예매하는 ‘취케팅(취소+티켓팅) 매크로’도 나왔다. 서울대 관계자는 “자동번호생성 시스템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매크로도 개발돼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선 매크로 이용자 경범죄 처벌
매크로 피해 사례가 잇따르고 있지만 제재할 방법은 별로 없다. 매크로 사용 자체가 불법이 아니어서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은 타인의 컴퓨터에 악성코드를 설치하거나 전달하는 경우만 규정해 처벌하고 있다. 자신의 컴퓨터에 설치하는 매크로는 정보통신망법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
암표 판매도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경범죄처벌법의 암표 판매 조항은 현장 판매만 불법으로 규정한다. 온라인에서 웃돈을 얹어 티켓을 판매하는 행위는 단속 대상이 아니라는 게 법조계 해석이다.
공연업계는 피해가 계속되자 업무방해에 해당한다며 적극 대응에 나섰다. 예스24는 지난 8월 매크로를 이용해 샤이니 등 아이돌 콘서트 티켓을 다량으로 상습 구매한 조모씨 등 6명을 영업방해혐의로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형법상 업무방해죄가 매크로 이용자에게 적용된 선례는 아직 없다.
경찰 관계자는 “매크로로 서버가 마비돼 회사가 구체적인 금전적 손실을 입거나 해당 매크로가 불법의 명령을 담았다는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선 매크로를 사용해 티켓을 매매하는 행위를 경범죄로 규정하는 추세다. 지난달 28일 미국 뉴욕주에선 매크로 프로그램인 ‘티켓봇(ticket bot)’을 이용해 콘서트나 스포츠 경기 입장권을 예매하는 행위를 경범죄로 분류해 최대 1000달러의 벌금이나 1년 이하 징역을 선고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매크로가 공정 경쟁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인식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국내에선 매크로 사용을 처벌할 명확한 규정이 없다 보니 편법적 행위가 방치되고 있다”며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선량한 소비자의 금전적 피해가 큰 만큼 관련 법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매크로(자동명령 프로그램)
매크로 명령어(macro instruction)의 줄임말. 마우스나 키보드로 여러 번 순서대로 해야 할 동작을 한 번의 클릭으로 자동 실행시키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사용자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개발됐지만 티켓 예매 등에서 편법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황정환/성수영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