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생명과학회사 바이엘
16가지 핵심 요소로 경쟁력 기준 통일
신입부터 CEO까지 같은 가이드라인 적용
직원들 목표 뚜렷해지고 상·하급자 소통 쉬워져
지난달 서울에서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한국경제신문사가 공동으로 개최한 인재포럼과 관련해 한국경제신문은 독일 레버쿠젠 바이엘 본사에서 가브리엘 욀슐레거 바이엘 인재개발총괄을 만나 바이엘이 이 문제에 어떤 해법을 적용하고 있는지를 들었다. 욀슐레거 총괄은 “임직원에게 요구되는 ‘경쟁력의 기준’을 통일했다”고 소개했다.
직원들에게 ‘경쟁력의 기준’ 제시
바이엘은 한 해 수입이 463억유로(2015년 기준)에 달하는 대규모 생명과학회사다. 한국에는 제약부문이 주로 알려져 있지만 제초제 등 농업 부문도 매우 크며, 최근에는 미국 몬산토 인수합병(M&A)을 하고 있다. 전 세계에 11만68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1863년 설립된 뒤 지금까지 바이엘은 다양한 경쟁력 모델을 적용했다. 그런데 조직이 커지고, 글로벌화되면서 최고경영자(CEO)의 판단이나 국가별 상황에 따라 제각각 다른 잣대를 쓰는 경우가 늘어났다. 한국에서의 채용 기준과 독일 본사의 기준, 멕시코에서의 기준이 조금씩 달랐다. 성과를 평가하고 승진하거나 보상할 때도 문화와 상황에 따라 우선되는 가치가 들쭉날쭉했다.
바이엘은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8가지 핵심 경쟁력과 8가지 리더 경쟁력을 추렸다. 모든 임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핵심 경쟁력은 고객 중심, 결과 추구, 협력, 복잡성 관리 등이며 리더로서의 역할을 판단할 때 사용되는 리더 경쟁력은 비즈니스 통찰력, 혁신 도모, 불확실성 관리, 인재 개발 등이다.
욀슐레거 총괄은 “회사가 글로벌해지면서 하나의 공통된 언어(기준)를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는 “좋은 인재의 기준은 여러 가지지만 가짓수가 너무 많아지지 않도록 핵심을 추려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며 “바이엘의 국가별 대표와 인재 담당자, 노조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해 가르치기 쉽고 개발하기 쉬운 것 위주로 ‘8+8’ 요소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직무능력 개선 목표 분명해져
인재의 선발 및 평가 관리 기준을 통일하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 그는 “사람을 채용할 때 인터뷰에서 무엇을 확인해야 할지가 분명해지는 것이 대표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채용 과정에서 누가 면접을 보는
에 따라 판단이 엇갈리는 일이 줄어들고 ‘우리는 어떤 사람을 원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구직자에게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관리자가 외부에서 사람을 뽑을 때나, 내부에서 팀원을 뽑아올 때 백지 상태에서 시작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장점은 임직원 스스로 ‘어떻게 해야 이 회사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기준이 확연해진다는 점이다. 총 16가지 경쟁력 기준은 채용뿐 아니라 성과 평가나 교육·연수 등의 과정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욀슐레거 총괄은 “강력한 평가의 ‘뼈대’를 만들어 놨기 때문에 신입사원부터 CEO까지 모두 같은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내가 다음 승진을 위해서는 어떤 부문의 역량을 개발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목표가 뚜렷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객 중심적인 포지션에 내가 발탁되기를 원한다면 온라인의 바이엘 라이브러리에 가서 우리 회사가 ‘고객 중심’이라는 것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고 직원의 고객 중심적인 면을 평가할 때 어떤 점을 본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며 “여기에 제시된 해당 경쟁력 개발 가이드라인을 보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해설했다. 전략적이고 효율적인 자기 개발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직원들은 막연하게 ‘이렇게 하면 회사가 높게 평가해 주겠지’ 하고 노력하지만, 회사는 그런 노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아서 생기는 비효율과 불만을 처음부터 해소할 수 있다.”며 상사가 하급자와의 면담을 통해 직무능력의 개선을 요구하거나 조언을 할 때도 자연히 이 기준을 활용하게 된다. 하급자는 상급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기가 좋고 상급자 역시 하급자의 개선점이 요구되는 근거를 분명히 제시할 수 있다. 그는 이 기준을 도입한 뒤 사내에서 상급자와 하급자 간 소통이 훨씬 쉬워졌다는 등의 다양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있다고 했다.
신규 채용 시 100일간 ‘허니문’
바이엘은 대규모로 채용할 때 ‘나쁜(안 맞는) 사람’을 고르는 데 중점을 두는지, ‘좋은 사람’을 확인하는 데 더 초점을 맞추는지를 묻자 욀슐레거 총괄은 “좋은 사람을 찾는 데 집중한다”고 답했다.
그는 “독일의 경우 구직시장 내 최상위 인재들이 바이엘에 지원하는 경향이 높고 ‘바이엘 직원’이라는 일종의 브랜드가 형성돼 있는 덕분”이라고 했다.
바이엘의 가치와 문화를 전 세계 지사의 말단 직원까지 공유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지에 관해 질문했을 때 그는 우선 “회사의 슬로건 ‘더 나은 삶을 위한 과학(Science for a better life)’ 자체가 강력한 메시지”라고 했다. 또 신규 채용자에 대해 100일간 일종의 허니문 기간인 ‘적응 과정(on-boarding process)’을 운영하며 회사의 가치를 공유하고 바이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욀슐레거 총괄은 많은 회사에서 직원을 관리할 때 사용하는 A~E 5등급 평가 시스템에 관해 부정적이었다. 그는 “우리도 그런 시스템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런 식으로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줄 수 없다”며 “매년 12월 한 차례씩 직원을 평가하는 것도 즉각적인 피드백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직 이런 시스템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열린 마음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레버쿠젠(독일)=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