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이 내년 초 1000억원 규모의 벤처 투자 펀드를 조성한다. 이 펀드는 포스텍 교수와 학생, 동문을 비롯해 지역의 젊은 창업자와 벤처를 지원하는 데 쓰인다.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KAIST와 광주과학기술원(GIST) 등 5개 과학기술특성화대 가운데 벤처 펀드를 독자적으로 운용하는 건 포스텍이 처음이다.

김도연 포스텍 총장(사진)은 1일 “학생과 교수들의 도전 정신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내년 상반기에 교내 및 지역 창업가에게 창업 자금을 지원하는 ‘포스텍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운용사 선정을 위해 벤처캐피털 두 곳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계획은 2일 포스텍에서 열리는 개교 30주년 기념행사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1000억원을 목표로 하는 이 펀드는 포스텍의 기술 이전비와 지역 인사들의 크라우드펀딩을 받아 조성한다. 내년 봄까지 500억원가량을 마련하고 단계적으로 1000억원까지 늘린다는 목표다. 예비 창업가에게 1억원의 창업 자금을 지원하고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30억원을 투자하는 단계별 투자 계획을 마련했다. 사업에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 등 창업 의욕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기로 했다.

김 총장은 “창업에 나섰다가 실패한 뒤 재기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보니 도전적인 창업에 나설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학교 구성원과 젊은 창업자들이 도전 정신을 갖고 실패를 연습해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다”고 했다.

포스텍은 국가 산업을 이끌 최고의 이공계 대학을 키우겠다는 고(故) 박태준 설립이사장의 교육보국(敎育報國) 철학과 파격적 지원으로 설립됐다. 2010년 더타임스가 시행한 세계대학평가에서 국내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28위에 올랐고, 설립 50년 이내 대학만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는 3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하며 잠재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포스텍은 올 들어 연구중심대학의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대표적 사례로 지난 4월 국내 대학 최초로 LG디스플레이와 1호 산학일체연구소를 설립했다. 산학일체연구소란 기업이 필요한 연구 인력을 포스텍이 교수로 채용하고 공동 활용하는 형태다. 학교 측은 올해부터 겨울방학을 줄이고 여름방학을 10주에서 12주로 늘렸다. 학생들이 하계 사회경험프로그램(SES)을 통해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다양한 사회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서다. 김 총장은 “대학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교육과 연구에 있지만 이제는 사회에 기여하는 데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대학이 뛰어난 인재를 양성하고 세계에서 앞서는 연구 성과를 내는 역할 외에도 사회에 기여하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