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경제와 정쟁 분리" 한목소리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면 각국이 경쟁적으로 보호무역주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정립된 자유무역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이 와중에 이른바 ‘최순실 국정 농단’에 휘말린 주요 기업의 총수들은 검찰 조사에 이어 국회 국정조사와 특별검사 조사에 또 불려나갈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흔들리는 국가 경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경제정책을 정쟁(政爭)과 분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새로운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팀을 서둘러 구성해 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위기를 피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기업인 대상 청문회는 핵심 사실관계를 신속하고 정확히 밝히는 수준에서 마무리해 기업들이 본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문했다.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 증폭”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지금이야말로 경제 운용을 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 금리 인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고, 주요 산업은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데 이어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라는 큰 정치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전 총리는 “아무리 외환보유액이 3700억달러를 넘는다고 해도 이럴 때 경제를 안정적이고 튼튼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진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며 “정부 경제팀이 대외 신인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위기 요인을 각별히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지금 경제 상황은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나쁘다”고 분석했다. 그는 “당시에는 대외적으로 세계 경제가 호황이었고 국민들이 ‘금 모으기’ 등 경제 살리기라는 명제 아래 힘을 모았다”며 “하지만 지금은 글로벌 저성장에 보호무역주의까지 팽배한 데다 안으로는 정치 문제가 경제를 완전히 덮어버렸다”고 설명했다.
권 원장은 “정치권이 청년 실업이나 가계부채 등 분초를 다투는 경제 현안들을 정치에서 분리해 다루도록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원장도 “경제 부문에서라도 리더십을 확실히 구축해야 한다”며 “국회가 속히 인사청문회를 열고 새 경제부총리가 경제 정책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라 걱정하는 정치인이 없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대구경북과학기술원 이사장)은 “정치인들이 국가의 미래보다는 정권을 누가 잡느냐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와 관계를 쌓아보려고 나서는 정치인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 정치권의 현실”이라며 “정치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지는 못할 망정 국가를 망치는 흉기가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권 원장은 “검찰 조사를 받은 기업인들을 국정조사 청문회에 또 부르는 시스템으로는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며 “청문회에서 대기업 총수를 윽박지르면서 반기업 정서를 조장하는 것은 우리 발등을 스스로 찍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사실관계를 정확히 듣고 싶은 국민의 요구에 따라 기업 총수가 청문회에 출석하는 것은 마땅한 의무지만 몇 번이고 불려 나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에 대한 국정조사는 한 번에 끝낼 수 있도록 국회에서 준비를 많이 해야 하며 이후에는 경영에 전념하도록 해야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이번 국정 농단 사태를 뒤에서 돈을 주고받는 관행을 제도적으로 근절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전 의장은 “대통령이 돈을 요구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기업이 돈을 낸 것도 국민 정서상 용인되는 시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인과 기업인 모두 새로운 국민 의식 수준에 맞춰야 한다”며 “국회는 잘못된 관행을 근절하는 제도를 세우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