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업계는 삼성전자가 29일 구체적 방안을 내놓지 않더라도, 중장기적으로 엘리엇 방식의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을 지배하려면, 그가 최대주주인 삼성물산이 삼성전자를 지배해야 하고 이는 삼성전자 인적분할을 통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엘리엇이 제안한 30조원의 특별배당과 독립 사외이사 선임 등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이다.
◆ 그룹 지배하려면, 삼성전자 인적분할해야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28일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가장 먼저 삼성전자의 인적분할이 실시될 것으로 봤다. 총수일가의 삼성전자 지배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 역할을 맡고 있는 삼성전자는 주주가 삼성생명(7.55%) 이건희 회장 외 특수관계인(4.91%) 삼성물산(4.25%) 삼성화재(1.32%) 삼성재단(0.09%)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밖에 국민연금(8.96%)과 자사주(13.15%), 기타(56.09%) 등이다.
이 중 이 회장 외 특수관계인, 계열사 지분을 모두 합쳐도 삼성전자 보유지분은 18.12%에 불과하다. 총수일가의 그룹 지배력이 낮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연구원은 "오너 경영을 하고 싶다면 반드시 지배구조 변환을 가시화해야 한다"며 "삼성전자 지배력을 키우지 못하면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가 그룹 전체로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시가총액 200조원을 훌쩍 넘어 지분을 직접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때문에 삼성전자를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하는 방법이 유력하다는 판단이다.
이 연구원은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상당 부분은 사업회사 가치"라며 "총수일가는 인적분할을 통해 가치가 줄어든 지주회사 지분을 싸게 사들일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과정은 이렇다. 인적분할하면 기존 주주들의 지분은 분할한 두 법인에서 각각 그대로 유지된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주회사 지분 4.25%와 삼성전자 사업회사 4.25%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후 삼성전자 지주회사는 사업회사 주식을 지주회사 주식과 바꾸는 공개매수(지분 스왑)를 한다. 사업회사 가치가 더 높기 때문에 기존 주주는 이 과정에서 보다 많은 지주회사 지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삼성물산은 4.25% 이상의 지주회사 지분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그룹 정점에는 삼성물산이, 아래로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삼성생명이 자리하게 된다. 삼성물산은 이 부회장 외 특수관계인이 지분 30.86%를 소유하고 있어 실질적인 그룹 지배가 가능해진다.
◆ 중간금융지주회사법 통과 여부 주목
현행 공정거래법상 일반지주회사는 금융사를 보유할 수 없다. 따라서 삼성생명 지분 19.34%를 가진 삼성물산은 공식적인 지주회사로 거듭날 수 없다.
이 연구원은 중간금융지주회사법 통과 여부에 따라 지배구조 개편이 바뀔 수 있다고 봤다.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앞서 설명한 것처럼 삼성물산을 통한 실질적 지배에 초점을 맞출 것이란 분석이다.
반면 법안이 통과된다면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회사 체제를 갖추고,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투자회사는 합병할 것으로 봤다.
삼성생명은 지난 11일 이사회를 열고 삼성증권 자사주 835만9040주(10.94%)를 매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증권 지분은 30.1%로 높아진다.
이 연구원은 "현행법상 삼성생명이 금융지주회사가 되려면 금융 자회사 지분을 30% 이상 보유해야 한다"며 "이번 삼성증권 지분 매입은 이를 위한 일환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융 부문은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지주회사 전환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삼성생명은 투자·사업 부문으로 인적분할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삼성생명도 지분 스왑을 통해 금융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이 국회 문턱을 넘은 뒤에는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지주회사를 합병, 그룹 전반적인 지배권을 견고하게 다질 것으로 봤다.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지주회사 합병 이후에도 지분 스왑의 과정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연구원은 "앞으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이 확고한 삼성물산은 어떻게든 유리한 입장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이같은 개편안이 이뤄지려면 주주들에게 이 부회장의 경영 능력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개편안이 주주총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다.
박상재 한경닷컴 기자 sangj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