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관료사회] 국장급 인사까지 좌지우지한 청와대
현 정부 들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정부 부처 장·차관뿐 아니라 실·국장급 인사에도 사사건건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사전 검증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고위공무원단(1~2급)의 승진 및 채용을 사실상 좌지우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 전반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최순실 씨(60·구속기소)가 청와대를 앞세워 정부 국장급 인사에도 영향력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21일 “각 부처에서 장관 결재를 받아 제출한 고위공무원 승진 및 채용 명단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거치면서 1순위 후보자가 바뀌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밝혔다. “장관들에게 인사권을 줬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설명과 달리 청와대가 부처 인사에 일일이 개입하면서 보직 임명이 늦어지는 일도 많았다는 게 각 부처 관계자들의 얘기다.

고위공무원단은 승진·채용 과정에서 인사혁신처 역량평가, 국가정보원 신원조회 및 각 부처의 승진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야 한다. 각 부처에서 제출한 명단을 토대로 인사처 산하 고위공무원 임용심사위원회가 최종 결정한다. 이 위원회는 인사처장과 차장, 민간위원 5명 등 7명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임용심사위원회 심사에 앞서 비공식적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검증을 거친다는 게 부처 인사담당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한 부처 관계자는 “고위공무원의 범죄 경력 및 음주운전 등 결격사유를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 해당 직위에 적합한지까지 민정수석실이 판단하는 일이 많다”고 털어놨다.

각 부처에서 제출한 고위공무원 후보자 순위가 바뀌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외교부, 보건복지부 등에서도 승진 후보자 순위가 바뀐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위공무원 임용심사위원회가 청와대가 낙점한 인사를 형식적으로 승인하는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인사처에 따르면 올 상반기 총 170건의 고위공무원 승진·채용 심사에서 169건이 통과됐다. 1건만 보류됐고 부결된 사례는 없다. 이에 대해 인사처 관계자는 “임용심사위원회에 상정되기 전에 각 부처에서 철저하게 해당 공무원의 자격을 심사했기 때문에 통과율이 100%에 육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