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1월 14일 오후 3시 46분

서울에 있는 사립대학들이 지난해 교비로 주식·채권 등 유가증권에 9000억여원을 투자해 연 0.27%의 저조한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과 2013년에도 수익률이 연 1%를 넘지 못했다.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기금운용 전문성 확대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실제 자금을 굴리는 대학들의 인식과 행태는 자본시장 변화를 따라잡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마켓인사이트] [단독] '아마추어 투자' 사립대학의 민낯
◆9000억원 넣고 25억원 수익

14일 교육부가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서울 소재 사립대 적립금 유가증권 투자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이화여대·홍익대·연세대·고려대 등 17개 대학은 주식·채권·수익증권 등 유가증권에 총 9004억6678만원을 투자해 약 25억원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학의 운용 수익률은 연 0.27%에 그쳤다.

투자 규모가 가장 큰 대학은 이화여대로 총 3202억4900만원을 유가증권에 넣었다. 이 중 3002억원을 채권에 넣었고, 200억원을 펀드 등 수익증권에 투자했다. 하지만 투자수익은 연 12억8203만원(0.4%)에 불과했다. 기부받은 회사 지분가치가 544만원에서 2억5000만원으로 급등한 중앙대를 제외하면 유가증권 투자 수익률 1위는 158억282만원을 채권에 투자해 수익률 연 4.5%를 기록한 한성대였다. 그 다음이 성균관대(연 4.2%) 고려대(연 2.4%) 명지대(2.1%) 연세대(1.6%) 순이었다. 나머지 대학은 손실을 보거나 수익을 내더라도 은행 예금 이자율보다 낮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특히 펀드상품 등 수익증권에 투자한 대학은 손실을 본 사례가 많았다. 서강대는 2008년께 투자한 채권형펀드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펀드 상품을 지난해 처분하면서 15억원 넘는 손실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서강대는 올 들어 운용자산 대부분을 은행 예금과 확정금리형 상품에 넣는 등 위험자산 투자를 최대한 줄이고 있다. 성신여대도 364억원을 펀드 상품에 투자했다가 58억원을 잃었다.

◆미국은 수익률 20%

대학들의 투자실적이 지난해에만 부진했던 것은 아니다. 2013년과 2014년에도 수익률은 각각 연 0.28%와 연 0.84%를 기록했다. 이를 놓고 대학들의 기금운용 전문성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투자를 다변화하고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기금운용 시스템을 갖춘 대학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학들은 재무부서에 담당 직원 2~3명을 두고 수천억원이 넘는 대학 기금의 운용을 맡기고 있다. 별도의 기금운용 인력이 없는 대학도 많다.

교비를 굴리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따가운 사회적 시선도 대학이 기금운용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이유다. 원금 손실에 대한 두려움도 기금 대부분을 예금이나 확정금리형 상품에 넣고 있는 배경이다. 고려대는 과거 주가연계증권(ELS)과 주가연계신탁(ELT)에 투자했다가 2012년 200억원이 넘는 손해를 본 사실이 밝혀지면서 당시 김정배 고려대 이사장이 사퇴하기도 했다. 한 사립대는 올 들어 미국 USAA부동산회사가 운용하는 ‘미국 임대 부동산 펀드’에 1000만달러를 투자했지만,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제 대학들도 기금운용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 대학 수입원의 다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저금리 상품에만 돈을 넣어 실질적인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는 것도 대학의 재정 건전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대학 기금은 보유 기한이 길어서 장기투자에 유리한 장점도 있다.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 대학은 민간 사모펀드(PEF) 운용사의 매니저들을 영입해 자산운용을 맡기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는 ‘하버드 매니지먼트 컴퍼니(HMC)’라는 자체 운용회사를 두고 직접 기금을 굴려 높은 수익률을 달성하고 있다. 2014회계연도 기준으로 하버드대는 연 15.4%의 기금운용 수익률을 기록했다. 예일대(연 20.2%), 프린스턴대(연 19.6%) 등도 기금운용에 적극적인 대학 중 하나다.

한 사립대 총장은 “대학 기금이 튼튼해야 그 수익으로 장학금도 늘리고 대학 발전을 위한 투자도 할 수 있다”며 “전문성 확보를 위해 각 대학 기금을 하나로 모아서 운용하는 ‘투자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훈/김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