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2016년 가을, 개와 돼지들의 시간…'치킨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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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대중은 개나 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거예요."
지난 7월 교육부 2급 관료(나향욱)가 인용했다 파면당한 말로,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대사다.
이 영화에서 기업은 정치와 결탁했고 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도, 영화 대사를 인용한 고위 관료도 모두 틀렸다.
올 가을 적당히 짖어대다 조용해질 줄 알았던 개와 돼지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학생들도 낡은 교과서 대신 미처 쓰여지지 않은 현실 교과서를 배우는 쪽을 택했다.
100만 시민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보다 말이 안 되는 일들이 경복궁 뒤편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광화문 거리 위의 시민들은 차분했다. 죽창과 쇠파이프 대신 마이크와 촛불을 들었다. 흥분도 하지 않았다. 경찰 차벽 앞에서 비폭력을 먼저 외쳤다.
충돌이 생기면 만류하는 것도 개와 돼지라던 시민들이었다. 이들은 의경 대원들 역시 누군가의 귀한 아들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질서정연한 시위에 외신도 놀랐다.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구호만큼 많이 들렸던 것은 서로에게 양해를 구하고 감사를 전하는 목소리였다.
100만 인파 속에 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떠밀리면서도 "아이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외침만은 파도처럼 앞뒤로 전달했다.
지하철 기관사들은 차량 내 안내방송으로 시민들을 응원했다. 역무원들은 사무실에서 나와 혼잡하지 않은 출구를 안내했다. 기쁘지만 웃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광화문 인근 유통업계는 슬픈 특수를 누렸다. 좁은 편의점에도 4~5명의 직원이 동원돼 매대의 먹을거리를 계속해서 채웠다. 식당엔 아예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인근 닭집에 재료가 다 떨어져 팔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돌았다. 실제 서울지방경찰청 앞 한 호프집엔 '치킨(닭) 없음'이란 안내문이 붙었다. 시민들은 발길을 돌리면서 "닭이 한 마리 있긴 있는데"라고 중얼거렸다.
한 대형마트에선 이날 닭고기 할인행사를 열었다. 행사명은 공교롭게도 '닭 잡는 날'이었다. 개와 돼지들의 '평화로운 분노'였던 지난 주말 집회의 또 다른 이름이었는지도 모른다.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거예요."
지난 7월 교육부 2급 관료(나향욱)가 인용했다 파면당한 말로,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대사다.
이 영화에서 기업은 정치와 결탁했고 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도, 영화 대사를 인용한 고위 관료도 모두 틀렸다.
올 가을 적당히 짖어대다 조용해질 줄 알았던 개와 돼지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학생들도 낡은 교과서 대신 미처 쓰여지지 않은 현실 교과서를 배우는 쪽을 택했다.
100만 시민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보다 말이 안 되는 일들이 경복궁 뒤편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광화문 거리 위의 시민들은 차분했다. 죽창과 쇠파이프 대신 마이크와 촛불을 들었다. 흥분도 하지 않았다. 경찰 차벽 앞에서 비폭력을 먼저 외쳤다.
충돌이 생기면 만류하는 것도 개와 돼지라던 시민들이었다. 이들은 의경 대원들 역시 누군가의 귀한 아들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질서정연한 시위에 외신도 놀랐다.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구호만큼 많이 들렸던 것은 서로에게 양해를 구하고 감사를 전하는 목소리였다.
100만 인파 속에 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떠밀리면서도 "아이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외침만은 파도처럼 앞뒤로 전달했다.
지하철 기관사들은 차량 내 안내방송으로 시민들을 응원했다. 역무원들은 사무실에서 나와 혼잡하지 않은 출구를 안내했다. 기쁘지만 웃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광화문 인근 유통업계는 슬픈 특수를 누렸다. 좁은 편의점에도 4~5명의 직원이 동원돼 매대의 먹을거리를 계속해서 채웠다. 식당엔 아예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인근 닭집에 재료가 다 떨어져 팔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도 돌았다. 실제 서울지방경찰청 앞 한 호프집엔 '치킨(닭) 없음'이란 안내문이 붙었다. 시민들은 발길을 돌리면서 "닭이 한 마리 있긴 있는데"라고 중얼거렸다.
한 대형마트에선 이날 닭고기 할인행사를 열었다. 행사명은 공교롭게도 '닭 잡는 날'이었다. 개와 돼지들의 '평화로운 분노'였던 지난 주말 집회의 또 다른 이름이었는지도 모른다.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