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지도층' 표현 넣어 "인권유린 당사자는 김정은" 해석
노무현 정부선 불참 또는 기권, MB정부 때부터 매년 찬성
결의안에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북한 상황의 ICC 회부로 인도에 반하는 죄에 가장 책임있는 자를 효과적으로 겨냥하기 위한 제재를 보다 발전시키는 것을 권장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올해에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북한 ‘지도층’을 명시한 내용이 결의안에 포함됐다. 결의안에는 “수십년간 최고위층 정책에 따라 지도층(leadership)의 효과적 통제 아래 기관에 의한 북한 내 반인도 범죄가 자행됐다는 근거를 COI가 제공했음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명기됐다.
지난해엔 ‘인권 유린의 최고 책임자’가 누구냐를 놓고 다른 해석이 나올 여지가 있었으나 올해는 지도층이란 표현을 사용해 사실상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북한 내 인권 문제의 당사자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밖에도 “북한이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에 재원을 전용한 것이 주민의 인도적·인권 상황에 미치는 영향에 깊이 우려한다”는 표현도 명시됐다. 이번 결의안에는 북한 내 인권 및 인도적 상황 개선을 위한 대화의 중요성에 주목한다는 내용이 새롭게 들어갔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해에는 남북 간 대화를 명시했으나 지금 북한 상황에선 대화를 위한 대화가 현실적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북관계 따라 인권결의안 찬반 갈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은 현재 유엔인권이사회의 전신인 유엔인권위원회가 2003년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시작됐다. 2년 후부터는 유엔총회에서도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되고 있다. 인권결의안이 채택된다고 해서 당장 북한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구속력은 없지만 문자 그대로 유엔의 결의인 만큼 영향력이 작지 않다. 북한도 유엔에서 자국 인권 문제가 제기되거나 인권결의안 채택 절차가 이뤄질 때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은 이런 영향력을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3월과 10월의 유엔 인권이사회와 유엔총회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며 지적과 비판의 수위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엔인권위원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처음 채택된 2003년 당시 노무현 정부는 찬반이나 기권을 선택하는 대신 ‘불참’을 결정했다. 북한의 인권 문제 제기에 대해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이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 등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다. 당시 윤영관 외교부 장관은 2003년 4월15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출석해 “우리 정부가 유엔인권위 결의안에 찬성하는 것이 북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영향을 미칠 것인지 조심스럽게 분석했으며, 이번 경우에는 찬성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후 정부는 2004년과 2005년 유엔인권위원회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서 기권했다. 2005년 유엔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될 때도 정부는 기권했으며 2006년 유엔총회에서는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한 달 전에 일어난 북한의 1차 핵실험이 정부의 태도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2007년 11월 유엔총회에서는 다시 기권으로 돌아섰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그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를 내며 “당시 정부가 사전에 북한에 의견을 구한 뒤 기권했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당시 의사결정에 관여했던 인사들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 및 6자회담의 진전으로 인해 개선된 남북관계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부터는 찬성 기조가 자리잡았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3월 인권이사회 북한인권결의안은 물론 같은 해 11월 유엔총회에서도 찬성표를 던졌다. 특히 EU와 일본 주도의 북한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고 이는 박근혜 정부 시기인 지금까지 동일하다.
국제사회 대북압박 강화된다
북한에 대한 다각도의 압박이 이어지면서 국제사회에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 3월 유엔 인권이사회 고위급 회기 연설에서 북한을 두고 “인권의 사각지대”라며 “국제 사회가 이제 행동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유엔 차원에서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방식은 ‘불러내 망신주기’다. 법적 구속력은 없어도 문제가 되는 국가나 개인을 명시해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방식이다. 북한인권결의안에선 북한이라는 한 나라의 인권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이에 대한 책임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유엔총회 인권결의안에 명시된 지도층이란 표현도 완전히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최고 책임자를 교도소·수용소의 책임자로 볼 수 있듯, 지도층도 당 또는 정부의 특정 지도부로 한정해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재국가 북한에서 가장 큰 책임을 지는 자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지만 결의안에 김정은의 이름은 들어가지 않았다. 국제 정치의 ‘작용-반작용’ 원리가 작용해서다. 북한 인권 문제에 비판적인 국가들은 더 명확하고 강력한 표현을 사용하려 하지만 이 문제에 중립적이거나 반대하는 나라들이 표결에 물러설 가능성이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결의안의 채택 여부만큼 얼마나 많은 나라가 찬성표를 던졌느냐도 중요하기 때문에 표현의 수위를 조절한다”고 설명했다.
이란은 2014년 유엔총회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 “개별 국가를 특정해 인권결의안을 채택하는 것은 유엔 헌장이 요구하는 보편성, 비선별성, 객관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에콰도르도 “해당 국가의 인권을 개선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이런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나라들은 대체로 인권 수준이 높지 않은 곳이지만 결의안에 너무 강력한 표현이 들어갈 경우 중립국들로부터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현실론이 작용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 발표된 유엔 COI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반인도주의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만큼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려는 국제 사회의 움직임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