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의심하는 미국 월가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부진한 경제성장률과 대기업 위기에 더해 정치적 리더십 공백까지 생기면서 경기를 부양하고 위기를 수습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의 분석을 인용해 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든 원화 가치가 달러당 1180원대까지 밀릴 수 있다고 관측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면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중국 위안화가 약세를 보여 원화도 동반 약세를 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면 위험자산 선호가 확대되고 안전자산인 일본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원화 약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한 달간 원화 가치는 3.7% 급락했다. 위안화와 엔화는 물론 미 대선의 영향을 직접 받는 멕시코 페소화보다 하락폭이 컸다.

월가의 한 외환 전문가는 “최근 외신 보도와 IB 보고서에 원화 약세 언급이 잦다는 것은 불안한 징조”라고 말했다. 지난달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4개월 만에 감소한 것은 원화 약세에 따라 평가액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외환당국이 시장에 개입하면서 나타난 결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부진한 경제성장률, 한진해운 파산 등 기업 리스크가 정치 스캔들과 맞물려 거리 시위를 촉발하면서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스피지수가 최근 수개월간 세계에서 가장 부진한 수익률을 기록한 점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반영했다고 지적했다.

한 IB는 보고서에서 “한국 정치권의 갈등으로 경기 부양에 필요한 추가 재정 확대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11월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를 결정할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전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 대기업과 구조개혁 문제가 정치력 공백사태에서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전했다. 또 “국회 분열로 인해 각종 법률안 통과가 지연되고, 경기 부양을 위한 추가 조치도 신속히 시행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한국의 미국 수출이 기아자동차 파업과 삼성전자 스마트폰 리콜 등 대표주자들의 부진으로 두 자릿수 감소(10.3%)한 점을 위기의 징조로 꼽는 목소리도 있다. 한 대기업 뉴욕법인장은 “경상수지를 지탱해 온 수출 경쟁력마저 무너지고 있다는 불안감이 현장에서 느껴진다”고 말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