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프로의 유구무언 (6)] "욕심 부리다 재앙…짧더라도 다음 샷 하기 좋은 곳으로"
일은 벌어졌다. 티를 떠난 볼이 크게 밀린다. 아웃오브바운즈(OB)인가. OB가 나면 얼마씩 줘야 하지. 하필 2배 판인데. 페어웨이를 지키고 환호하는 동반자들이 얄밉다. 카트에 오른다. 괜히 욕심을 부렸나. 부드럽게 칠 걸. 동반자들 볼이 어디 있는지 둘러본다. 잔디 위에 흰 점 세 개가 보인다. 버디 한 방 맞을 수도 있겠다. 내 볼은 안 보인다. 잠깐 함께 찾아주는 시늉만 하고 제 볼 챙기러 가는 동반자들이 야속하다. 정말 나갔나. 몇 번이나 침을 꿀꺽 삼킨다. 아~, 찾았다! 휴우. 그런데 이런, 고약한 자리다. 스탠스는 불편하고 볼은 러프에 반쯤 잠겼다.

[김용준 프로의 유구무언 (6)] "욕심 부리다 재앙…짧더라도 다음 샷 하기 좋은 곳으로"
게다가 나무가 가로막고 있다. 나무를 넘길 수 있을까. 아슬아슬해 보인다. 러프라 저항이 클 테니 한 클럽 올려 잡아야 하는데. 그러다간 나무를 못 넘길 것 같고. 스탠스도 불편한데 레이업(Lay Up) 할까. 다들 ‘파’ 이상 잡을 것 같은데 나만 ‘보기’를 하면 돈이 얼마야. 그래 온 그린을 시도하자. 둘 중 긴 채로 간다. 아니야, 잠깐! 나무를 넘길 수 있을까. 아무래도 걸릴 것 같은데. 그래도 온 그린 시켜야지. 러프가 거친데 콘택트는 제대로 될까. 레이업 할까. 차라리 좀 짧은 채를 잡고 나무만 넘길까. 아니야, 온 그린 해보자. 에이, 모르겠다. “으악.”

이런 경험이 없으신가. 아마추어 시절 나는 수도 없이 많았다. 매니지먼트를 배우고 난 뒤론 절대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같은 상황이라면 다음과 같다.

시나리오 #1. 앗 밀렸다. 살았겠네. 다행이다. 괜한 욕심을 부렸어. 할 수 없지 뭐. 볼 찾은 것만 해도 어디야. 홀까지는 140m인데. 러프와 불편한 스탠스를 감안하면 한 클럽 더 잡아야 하니까. 그럼 7번 아이언이네. 잠깐, 거리만 계산하면 그렇지만 7번으로는 나무를 넘길 수 없을 것 같아. 무리하다가 나무 맞고 OB라도 나면 트리플 보기 아냐. 그러면 내가 무너지지. 확실한 채는 9번이나 피칭인데. 그래, 나무만 넘겨서 그린 근처까지만 가자. 30m쯤 남으면 어때. 어프로치 하면 홀에 붙일 수도 있어. 요즘 어프로치 잘하잖아. 혹시 딱 못 붙여도 미들 퍼트를 성공할 가능성도 있어. 파 아니면 보기지 뭐. 동반자들도 2온에 3퍼트 할 수도 있지. 안 되면 내기 돈 주고 만다. 자, 간다.

시나리오 #2. 이런, 나무가 높아서 못 넘기겠네. 할 수 없지. 레이업 해야지. 어디 보자. 페어웨이 쪽으로 50m쯤 보내면 되겠군. 거기서 홀까지 대충 110m쯤 남겠는데. 그럼 피칭웨지로 홀을 노릴 수 있지. 좋아. 내가 장거리 웨지샷엔 일가견이 있으니까. 잘하면 세 번째 샷으로 홀에 붙일 수 있을 거야. 가까이 못 붙여도 롱 퍼트가 기적적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말이야. 그리고 보기 하면 깨끗하게 주지 뭐. 다음 홀에 만회하면 되니까. 좋아. 레이업이다. 피칭을 짧게 내려 잡고. 스탠스 단단히 하고. 마음속으로 되뇌자. 50m, 50m, 나이스 레이업.

트러블 상황에서 가장 잘 친 샷은 다음 샷을 하기 가장 좋은 곳으로 보낸 샷이다. 비록 하이브리드로 쳐야 하는 거리가 남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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