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업체 보복 적발땐 공공공사 입찰참여 제한
'갑질'이 경쟁력 발목잡아
대금 늑장지급 집중 감시…'한경 갑질 리포트' 공감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사진)은 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범(汎)국가적인 대규모 할인행사의 이면에는 대형 유통업체가 납품업체에 각종 비용을 전가하거나 과도하게 낮은 납품가를 강요하는 불공정행위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위원장은 코리아세일페스타 기간에 인터넷 신고센터에 신고가 들어온 대형 유통업체의 불공정행위 중 분쟁조정이 성립되지 않은 사건을 조사 대상으로 지목했다.
그는 공정위에 신고한 하도급업체를 원청업체가 보복하는 행위도 강력하게 제재할 방침이다. 공정위는 원청업체가 보복행위로 한 번이라도 검찰에 고발되면 공공기관 발주 공사 입찰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연내 도입할 예정이다.
정 위원장은 “하도급업체 간담회를 열면 참석자들은 원청업체에 발언 내용이 새나가는 것을 두려워해 업체명을 공개하기를 거부한다”며 “보복행위는 학교폭력과 비슷해서 누구를 믿고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술 탈취와 유보금 관행(하도급대금 지급유예) 등의 ‘갑질’도 공정위의 집중 감시 대상이다. 정 위원장은 “지난 5~6월 하도급업체에 기술자료를 제공해달라고 요구하면서 서류를 남기지 않은 원청사업자를 대상으로 기술 탈취 관련 조사를 했다”며 “7월 기술유용행위에 최대 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정액과징금제를 도입해 법 위반 업체를 엄중하게 제재할 근거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유보금 관행과 관련해선 “지난 상반기 대형 건설사를 대상으로 한 점검에서 31억원의 미지급대금을 지급하도록 조치했지만 자진시정을 하지 않은 업체도 있었다”며 “서면실태조사를 통한 현장점검도 적극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이 ‘갑질 척결’에 공을 들이는 것은 익명제보센터 운영, 하도급대금 직불제 시행 등을 통해 불공정관행이 일부 개선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새로운 갑질 유형이 계속 나타나고 있어서다. 그는 “갑은 윽박지르고 을은 살아남기 위해 참고 넘어가면 기업 경쟁력이 낮아진다”며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기업 간 갑질이 계속되면 국가경쟁력은 끝난다”고 지적했다.
정 위원장은 ‘상생협력 문화’를 갑질 척결의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경찰과 검찰이 범죄자를 처벌해도 사건이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공정위의 제재 강화만으로는 불공정행위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갑과 을의 상생이 하나의 문화로 뿌리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현대자동차가 공정거래협약을 체결한 협력업체의 기술 개발을 지원해 연 310억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본 사례가 있다”며 “한국 기업이 글로벌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납품업체와 ‘같이 간다’는 생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 위원장은 한경이 지난달 10~14일 닷새간 기획 보도한 ‘2016 대한민국 갑질리포트’에 대해 “꼼꼼하게 읽었고 공감한다”고 했다. 그는 “언론이 앞장서서 지적해야 한국 사회의 갑질 문화가 없어진다”며 “공정위도 시장경제와 관련한 갑질이 사라지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