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 인터넷 공유기 등을 생산하는 시스코는 지난 3월 이스라엘 반도체 설계업체(팹리스) 리에바를 3억2000만달러에 인수했다. 창업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리에바는 시제품조차 만들지 못하던 회사다. 시스코 측은 “우리가 지닌 하드웨어 역량에 리에바의 반도체 기술을 합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무선 인터넷 송수신에 특화된 시스템 반도체를 만들어 제품 시장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시스코가 별난 게 아니다. 2010년 이후 정보기술(IT)업계에서 잘나간다는 기업들은 모두 자체 시스템 반도체 기술을 키우고 있다. 일본 통신업체 소프트뱅크는 7월 세계 최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설계업체 ARM을 인수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엔 아마존이 이스라엘 팹리스 안나푸르나랩을 인수했다. 구글은 그간 축적한 반도체 설계 기술을 바탕으로 지난 6월 자체 인공지능 전용 칩 TPU를 내놨다.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맞아 갈수록 커지는 시스템 반도체의 중요성 때문이다. 시스템 반도체의 기능은 크게 센서와 프로세서, 통신으로 나뉜다. 센서는 온도, 압력, 습도, 신체 정보 등을 감지해 전자적 신호로 변환해주는 반도체다. 자율주행차가 다른 차를 감지하고, 스마트 밴드가 맥박을 측정할 수 있도록 한다.

프로세서는 중앙처리장치(CPU) 등 전통적인 연산 기능을 의미한다. 통신은 이처럼 만들어진 정보를 서버에 보내거나 다른 기기와 소통할 수 있도록 한다. 개별 기기가 센서로 채집한 정보를 분석해 다른 기기와 소통하는 IoT 생태계는 시스템 반도체가 있어서 가능하다.

인텔은 2020년이 되면 500억개의 IoT 기기가 44조기가바이트(GB)의 데이터로 통신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만큼 시스템 반도체 시장도 커진다. 그런데 경쟁의 룰은 메모리 반도체와 다르다.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표준화된 제품을 보다 많이, 싸게 생산하는 것이 승패를 좌우한다.

하지만 시스템 반도체는 개별 제품군에 최적화된 반도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자동차와 TV에 들어가는 제품이 각각 다른 기능을 구현해야 하는 등 시스템 반도체의 종류도 수천수만가지로 분화돼야 해서다.

전승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단일한 칩을 보다 많은 기기에 적용할 수 있는 모듈화와 용량이 적은 배터리로도 오래 버티는 저전력은 앞으로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중요한 경쟁 요인”이라며 “반도체 역량을 확보해 제품 및 서비스 질을 높이려는 기업의 움직임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