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을 인간의 신경에 비유하기도 한다. 신체 부위가 아무리 튼실하다고 해도 신경이 제대로 연결돼 있지 않으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한국도 반도체, 이동통신, 인터넷, 방송 등 정보통신을 중시하고 있고 이는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 4차 산업혁명에서도 정보통신기술(ICT)이 산업 간 융합을 이끌어내면서 신산업 및 일자리 창출이 이뤄진다고 하니, 미래 국가산업경제에서도 ICT의 중요성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우리 정보통신 세상이 우리가 제조한 ICT 제품으로 채워지기보다는 해외 기업 제품의 점유 폭이 커지고 있는 점은 우려스럽다. 카카오톡, 네이버, 내비게이션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알리바바, 페이스북, 샤오미, 화웨이 등이 차지하는 범위가 커지고 있다. 부가가치가 높은 상거래, 물류, 금융, 기업 정보통신망 등 전문 서비스 영역에서 이들 해외 제품의 점유율은 더 크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ICT산업 융합제품인 드론(무인항공기), 로봇, 자율주행자동차, 첨단 의료장비 및 서비스 등에서도 해외 제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ICT 주도권 편향에는 유럽연합(EU)에서도 경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이 왜 이런 처지에 놓였을까. 국내 ICT 생태계가 깨졌기 때문이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ICT 생태계 구성 요소는 정부, 통신사, 제조사, 연구계(국가출연연구소), 그리고 이용자다. 지금은 이들 구성요소가 뿔뿔이 나뉘어 각자도생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구성요소 간에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한 협력보다는 충돌과 갈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는 ICT 생태계 관리를 책임지는 정부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밖에 없다. 2000년대 들어 ICT 강국이라는 착시에서 국내 ICT 기업의 생존텃밭인 국내 시장을 세계 거대기업에 개방했고, 국내 ICT 기업을 세계 경쟁시장으로 등 떠밀어 내보내려 했다. 이로써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제외한 수많은 ICT 기업이 생명력을 잃고 사라져 현재 상태에 이르렀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분위기도 소멸됐다. 해외시장에서 그나마 선전하는 대기업은 국내에서 중소기업의 자생적 발전을 막는 주체로 비난받고 있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제도 등의 정책도 구호 수준에 머물면서 실효가치를 잃고 말았다. 여기에다 ICT산업이 잘나간다고 착각하던 정부와 정치권은 개인정보보호법,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등 강력한 규제 정책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국내 ICT 시장이 왜곡돼 국내 기업 성장은 억제하고 해외 기업과의 역차별을 조장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ICT 기업의 대외 경쟁력을 높이려하기보다는 국내 ICT업계를 압박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규제 법규는 일단 제정되면 이에 얽힌 사람과 기업, 특히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 간의 이익충돌 상황이 전개되면서 법규 개정이 지극히 어려워지기 때문에 더 신중했어야 했다.

이와 함께 정치권에서는 정보통신을 물 또는 공기와 같은 필수불가결한 생활요소로 강조하며 정보통신 요금 인하란 듣기 좋은 구호로 통신사를 압박하고 있다. 정보통신은 무한정한 자원이 아니고 수많은 ICT 생태계 요소가 연결돼 이뤄내는 경제적 산물이다. 지나친 통신사 압박은 통신 인프라 투자 감축 또는 값싼 해외 제품 도입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국내 ICT산업 전반에 압박으로 작용해 국내 산업 위축과 해외 기업 진입 확대로 이어지는 결과로 나타난다.

국가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국내 ICT 생태계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협력적이고도 생산적인 관계로 복원시키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동시에 정부 및 사회의 규제 분위기를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한 상생 발전 분위기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의 정보통신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해외 ICT 기업과의 협력관계까지를 포함한 절묘한 국내 ICT 생태계 활성화 정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박진우 < 고려대 교수·공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