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이천공장 내부 모습. 한경DB
SK하이닉스 이천공장 내부 모습. 한경DB
지난달 프랑스 파리 패션쇼에서는 반도체 회사인 인텔이 주목받았다. 착용자의 스트레스 상태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패션 벨트를 영국의 유명 디자이너 후세인 샬라얀과 함께 선보여서다. 이 벨트엔 각종 시스템 반도체가 장착됐다.

유튜브엔 1분마다 400시간 분량의 동영상이 업로드된다. 이들 동영상은 세계 전역의 유튜브 데이터센터에 저장되고, 세계 시청자에게 서비스된다. 스트리밍(실시간 전송) 수요가 확대되고 화질이 높아질수록 데이터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드 컴퓨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반도체 시장의 판이 바뀌고 있다. 업계에선 1980년대 중반 개인용컴퓨터(PC),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에 이어 IoT를 중심으로 한 ‘3세대 시장’이 열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3420억달러 규모인 반도체 시장은 2025년 6400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반도체, 판이 바뀐다] IoT·클라우드발 수요 폭발…반도체 시장 10년 내 두 배로 커진다
4~5배 늘어나는 반도체 수요

컨설팅업체 PwC에 따르면 세계 IoT 기기 수는 2014년 127억개에서 2020년에는 500억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기기뿐 아니라 가전, 자동차, 집이 모두 연결된다. 반도체 수요는 이에 비례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전승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주변 정보를 실시간 수집하는 센서, 정보를 다른 기기에 전송하는 통신, 수집된 정보를 분류하고 분석하는 프로세서 등과 관련한 반도체 사용이 한층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IoT 확산에 따른 데이터 증가와 함께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확대도 데이터 폭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10여개 데이터센터를 가진 페이스북은 전 세계에 세 곳의 데이터센터를 추가로 짓고 있다. 매일 업로드되는 수십만개 동영상 때문이다. 시스코에 따르면 지난해 1.6제타바이트(ZB·1조기가바이트와 동일)이던 세계 클라우드 정보량은 2019년 8.6ZB에 이를 전망이다. 페이스북과 유튜브, 구글, 알리바바 등 정보기술(IT) 기업이 가진 데이터센터도 그만큼 늘어나야 한다.

여기에 비례해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고 빠르게 입출력할 수 있는 메모리가 각광받을 수밖에 없다. 박정환 SK하이닉스 수석연구원은 “앞으로 개인이 빅데이터를 관리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개인이 가족의 데이터를 개인용 홈서버에 저장하면 더 많은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생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삼성 인텔 곳곳에서 맞붙을 듯

판이 바뀌면서 경쟁 구도도 변하고 있다. 연산(CPU)과 저장(메모리)이라는 반도체산업의 전통적 구분도 무의미해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작년 12월 ‘바이오 프로세서’ 양산을 시작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심박 수, 심전도, 피부 온도 등 생체반응을 측정하는 칩으로 인텔의 헬스케어 칩 큐리와 경쟁할 전망이다. 또 삼성의 IoT 플랫폼 아틱은 인텔의 IoT 프로세서 E3900과 다투게 된다.

인텔은 4세대(4G) LTE보다 100배 빠른 5G 통신 시장을 노리고 모뎀칩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퀄컴, 삼성과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이전에는 CPU를 대표하는 인텔과 메모리 반도체를 주로 생산하는 삼성전자가 같은 시장에서 맞닥뜨리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새 생태계에서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 등의 역할도 확대된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산업전략본부장은 “중소 규모의 팹리스가 설계한 반도체를 대신 생산해주는 파운드리가 공생하는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