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연극은 집중력…핵심 꿰뚫어 보면 다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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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개막 연극 '불역쾌재' 주연 맡은 원로배우 이호재
풍류 즐기는 호인 경숙역 연기
상반된 사상·성격 가진 두 관료, 금강산으로 떠나는 여정 그려
풍류 즐기는 호인 경숙역 연기
상반된 사상·성격 가진 두 관료, 금강산으로 떠나는 여정 그려
배우 이호재(75)는 연극계에서 알아주는 애주가다. 공연을 마치고 나면 동료 배우들과 둘러앉아 소주 한잔을 빼놓지 않는다. 기분이 좋을 때는 ‘글라스’로 마신다. 어느 날 함께 술을 마시던 장우재 극단 이와삼 대표가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이렇게 술을 많이 드시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십니까.” 그가 심드렁하게 답했다. “연극은 집중력이야. 핵심을 꿰뚫어 보는 것. 그게 보이면 다 할 수 있어.”
지난 20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연극 ‘불역쾌재(不亦快哉)’의 막바지 연습에 한창인 그를 만났다. “식사는 했느냐”는 질문에 그가 말했다. “어제 모처럼 연습이 일찍 끝나 다 같이 술을 한잔 했어요. 그래서인지 오늘은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러요, 하하.”
26일 개막하는 ‘불역쾌재’는 연극계의 ‘이야기꾼’으로 꼽히는 장 대표가 대본을 쓰고 연출하는 신작이다. 조선시대 문인 성현이 쓴 기행문 ‘관동만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상반된 사상과 성격을 지닌 두 관료 기지와 경숙이 ‘상대방 논리의 허점을 찾아 고하라’는 왕의 명을 받고 금강산으로 떠나는 여정을 그렸다. 그는 풍류를 즐기는 호인 경숙 역을 맡았다.
“즐거움이란 감정은 어떤 사람에게는 즐거움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반대의 감정으로 다가가기 쉬워요. 어떤 사람이 즐거울수록 다른 사람은 즐겁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지요.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란 의미의 연극 제목은 두 사람이 동시에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매사에 원리원칙을 강조하는 기지에게 경숙은 말한다. “보시요. 아직 입하도 아니 되었는데 벌써 이리 덥소. 그럼 지금이 봄이요, 여름이요? 봄도 사람이 지은 말이고 여름도 사람이 지은 말이니, 그 말에 연연하기보다 그저 이 흐르는 날씨를 즐기자는 것이오.”
경숙은 그와 얼마나 닮았을까. “대본 수정 과정에서 삭제됐지만 원래 이런 대사가 있었어요. ‘술 한 잔 먹고 작곡하고…또 한 잔 먹고 곡 쓰고…난 원래 노는 게 좋았으니까, 그게 나니까.’ 그 부분이 비슷하죠.” 인터뷰 중간에 “작품 얘긴 이만하면 됐고, 공연 끝나고 술이나 한잔 해!”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도 경숙이 겹쳤다.
1963년 ‘생쥐와 인간’으로 데뷔했으니 올해로 연기 인생 53년째다.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을 받았고 이해랑연극상, 동아연극상 등을 수상했다. 영화와 TV드라마에도 가끔씩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연극계 최고령 현역 배우’로 꼽히는 그는 올해도 ‘장수상회’ 등 네 편의 연극 무대에 섰다. SBS 드라마 ‘닥터스’에도 출연했다. 그는 경숙과 기지가 금강산으로 떠나듯, 연극 한 편을 끝내고 쉴 때면 경북 영주로, 충남 천안으로 훌쩍 떠난다고 했다.
“부석사 아래에 집이 한 채 있어요. 소백산 기슭에 극단 ‘영주’라고 있는데, 폐교를 빌려 극단 사무실로 만들었어요. 그중 관사 한 채를 나한테 준 거죠.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을 맞으러 거길 가요. 근데 겨울에는 무지 추워. 그땐 천안에 사는 한 스님이 주신 집으로 가죠. 서울에선 찾아오는 이들을 만나지 않을 수가 없지만, 거기 가면 혼자 있거나 스님하고만 얘기해요.”
인터넷도 사용할 줄 모르고, 아직도 접는 휴대폰을 쓰는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 그게 좋은 거야”라며 웃었다. 경숙의 대사대로 ‘흐르는 날씨 따라 즐기는 삶’이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지난 20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연극 ‘불역쾌재(不亦快哉)’의 막바지 연습에 한창인 그를 만났다. “식사는 했느냐”는 질문에 그가 말했다. “어제 모처럼 연습이 일찍 끝나 다 같이 술을 한잔 했어요. 그래서인지 오늘은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러요, 하하.”
26일 개막하는 ‘불역쾌재’는 연극계의 ‘이야기꾼’으로 꼽히는 장 대표가 대본을 쓰고 연출하는 신작이다. 조선시대 문인 성현이 쓴 기행문 ‘관동만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상반된 사상과 성격을 지닌 두 관료 기지와 경숙이 ‘상대방 논리의 허점을 찾아 고하라’는 왕의 명을 받고 금강산으로 떠나는 여정을 그렸다. 그는 풍류를 즐기는 호인 경숙 역을 맡았다.
“즐거움이란 감정은 어떤 사람에게는 즐거움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반대의 감정으로 다가가기 쉬워요. 어떤 사람이 즐거울수록 다른 사람은 즐겁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지요.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란 의미의 연극 제목은 두 사람이 동시에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매사에 원리원칙을 강조하는 기지에게 경숙은 말한다. “보시요. 아직 입하도 아니 되었는데 벌써 이리 덥소. 그럼 지금이 봄이요, 여름이요? 봄도 사람이 지은 말이고 여름도 사람이 지은 말이니, 그 말에 연연하기보다 그저 이 흐르는 날씨를 즐기자는 것이오.”
경숙은 그와 얼마나 닮았을까. “대본 수정 과정에서 삭제됐지만 원래 이런 대사가 있었어요. ‘술 한 잔 먹고 작곡하고…또 한 잔 먹고 곡 쓰고…난 원래 노는 게 좋았으니까, 그게 나니까.’ 그 부분이 비슷하죠.” 인터뷰 중간에 “작품 얘긴 이만하면 됐고, 공연 끝나고 술이나 한잔 해!”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도 경숙이 겹쳤다.
1963년 ‘생쥐와 인간’으로 데뷔했으니 올해로 연기 인생 53년째다.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을 받았고 이해랑연극상, 동아연극상 등을 수상했다. 영화와 TV드라마에도 가끔씩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연극계 최고령 현역 배우’로 꼽히는 그는 올해도 ‘장수상회’ 등 네 편의 연극 무대에 섰다. SBS 드라마 ‘닥터스’에도 출연했다. 그는 경숙과 기지가 금강산으로 떠나듯, 연극 한 편을 끝내고 쉴 때면 경북 영주로, 충남 천안으로 훌쩍 떠난다고 했다.
“부석사 아래에 집이 한 채 있어요. 소백산 기슭에 극단 ‘영주’라고 있는데, 폐교를 빌려 극단 사무실로 만들었어요. 그중 관사 한 채를 나한테 준 거죠.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을 맞으러 거길 가요. 근데 겨울에는 무지 추워. 그땐 천안에 사는 한 스님이 주신 집으로 가죠. 서울에선 찾아오는 이들을 만나지 않을 수가 없지만, 거기 가면 혼자 있거나 스님하고만 얘기해요.”
인터넷도 사용할 줄 모르고, 아직도 접는 휴대폰을 쓰는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 그게 좋은 거야”라며 웃었다. 경숙의 대사대로 ‘흐르는 날씨 따라 즐기는 삶’이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