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최순실 의혹' 정면돌파
박근혜 대통령(사진)은 20일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관련한 최순실 씨 의혹에 “만약 어느 누구라도 재단과 관련해 자금 유용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그동안 국정감사에서 경제단체 주도로 설립된 두 민간재단과 관련해 많은 의혹이 제기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대통령이 미르재단과 최씨 관련 의혹에 구체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엄정한 검찰 수사를 지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박 대통령은 “재단들이 내 퇴임 후를 대비해서 만들어졌다는데 그럴 이유도 없고, 사실도 아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두 재단의 설립 과정과 관련해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라는 국정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기업들이 뜻을 모아 세웠다”며 “과거에도 많은 재단이 기업의 후원으로 사회적 역할을 해 왔는데 전경련이 나서고 기업들이 이에 동의해 준 것은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씨 등 비선 실세 개입 의혹을 전면 부인한 것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앞으로 두 재단이 문화계와 어려운 체육인들을 위한 재단으로 거듭나 더 이상 의혹이 생기는 일이 없도록 감독기관이 감사를 철저히 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 '최순실 의혹' 정면돌파
박근혜 대통령은 20일 17분간의 발언에서 절반 이상(9분가량)을 미르·K스포츠재단 및 최순실 씨 의혹 등을 해명하는 데 할애했다. 박 대통령은 “가뜩이나 국민 삶의 무게가 무거운데 의혹이 의혹을 낳고, 그 속에서 불신은 커져가는 현 상황에 제 마음은 무겁고 안타깝기만 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앞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중단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청와대는 그동안 최씨 의혹 등에 대해 “근거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최씨가 독일에 페이퍼컴퍼니로 의심받는 회사를 세우고, K스포츠재단의 돈을 지원받은 정황이 나오자 기존의 무대응 전략에서 정면돌파로 방향을 틀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씨의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봐주지 말고 엄정히 수사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최씨와 두 재단 관련 의혹이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지지율이 급락하고, 국정의 발목까지 잡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최씨의 자금유용 등이 사실이라면 그가 호가호위하고 다닌 것 아니겠느냐”며 “현 정부에 비선실세는 없다. 엄정한 수사를 통해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최씨 의혹 등에 대해 엄정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면서도 두 재단 설립 취지와 관련해서는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라는 핵심 국정과제를 지원하도록 기업이 뜻을 모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지난해 2월 청와대에서 재계 총수 21명과 한 오찬 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업인들에게 문화와 체육에 대한 투자 확대를 부탁한 바 있다”고 말했다. 또 “공감대를 형성할 때까지 기업인들과 소통하며 논의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미르재단은 지난해 10월, K스포츠재단은 올해 2월 설립됐다.

이 같은 언급은 박 대통령이 국정과제 실현을 위해 여러 경로로 기업에 협조를 요청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재단이 본인의 퇴임 후를 대비하려는 의도나 이른바 비선실세의 개입 등으로 설립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재계 주도로 설립된 재단들은 당초 취지에 맞게 해외 순방 과정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소위 코리아 프리미엄을 세계에 퍼뜨리는 성과도 거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의미있는 사업에 도가 지나친 인신공격성 논란이 계속 이어진다면 문화융성을 위한 기업의 순수한 참여 의지에 찬물을 끼얹어 기업들도 더 이상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국민의 분노는 거의 폭발 지경”이라고 말했다. 손금주 국민의당 수석대변인은 “위기 주범인 측근들에 대해선 침묵하고 무작정 논란을 덮자는 대통령 발언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검찰은 이날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최씨 등 재단 관계자의 통화내역 확보에 나서는 등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이날 오후엔 문화체육관광부 국장급 관계자 2명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장진모/박한신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