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기억 안난다" 질문 차단
'메모 습관' 몸에 밴 송 전 장관, 기권 과정 구체적으로 적시
이재정 등 문재인측 주장 반박
박지원 "국민이 누구 말 믿겠나"
쟁점은 기권에 앞서 북한에 사전 의견을 타진했는지 여부다.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는 기권 방침을 최종 결정한 시점도 논란거리다.
문 전 대표 등 4명은 “북측에 사후통보했을 뿐 의견을 구할 사안은 아니다”고 일축했다. 1 대 4의 ‘진실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회고록 공방은 송 전 장관이 19일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기록이 있다”고 언급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송 전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당시 청와대 회의 관련 기록을 공개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게 좀 논란이 돼서 말씀드리는 것인데”라며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양측의 공방은 당시 정무적 판단과 기억에 의존하는 문 전 대표 등 4명과 꼼꼼히 메모와 기록 보관이 몸에 밴 외교관인 송 전 장관의 ‘디테일’ 차이에서 이미 승부의 추가 기운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기자와 만나 “회고록을 낸 의도는 모르겠지만, 송 전 장관은 치밀하고 똑똑한 사람으로 기억한다”며 “국민은 기억이 잘 안 난다는 문 전 대표와 당시 상황을 줄줄이 꿰고 있는 송 전 장관 중 누구 말을 더 믿겠느냐”고 반문했다.
문 전 대표는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기억이 잘 안 난다”며 질문 자체를 차단했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새누리당이 선거만 다가오면 고질병처럼 색깔론을 또 하고 있는데 이런 아주 못된 버릇을 이번에 꼭 고쳐놓겠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도 이날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기권한다는 것을 (북측에) 미리 알려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회고록은 11월16일 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정식 논의된 시점부터 5일 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과 4명 당사자의 관련 발언 및 회의 분위기 등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송 전 장관은 16일 노 전 대통령이 김영일 북한 총리와 만난 뒤 결의안 찬성에 부담을 느끼자 A4 용지 4장 분량의 친필 호소문을 심야에 전달했고, 대통령의 지시로 일요일인 18일 회의가 재소집됐다고 적시했다. 그 자리에서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북채널을 통해 의견을 확인해보자는 국정원장의 제의가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11월19일 대통령을 수행해 싱가포르 출장길에 올랐던 송 전 장관은 그 다음날인 20일 대통령 숙소에 불려가 백 안보실장이 들고 있던 북측 ‘쪽지’를 건네받아 눈으로 확인했다. 쪽지엔 “결의안 찬성은 북남관계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는 북측 경고가 담겨 있었다고 전했다. 이때 기권 방침이 최종 결정됐다는 게 송 전 장관의 주장이다. 노 전 대통령은 실망한 송 전 장관에게 “찬성한 뒤 송 장관 사표를 받을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는데…”라고 했다고 한다. 송 전 장관이 곧바로 “국제사회에서 체면도 살고 북한 입지도 배려해주는 고육지책이 맞습니다”고 하자, 노 전 대통령은 “북한에 묻지 말았어야 했는데… 공기가 무거워서 안되겠네”라면서 침실로 향했다고 한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