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서 쿠바로…한민족과 함께한 '김치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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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디아스포라' 세미나
해외 이주민의 김치 연구
중앙아시아 '짐치'는 시고 쓴맛…멕시코·쿠바, 선인장 사용
"재료는 변해도 전통은 지켜"
해외 이주민의 김치 연구
중앙아시아 '짐치'는 시고 쓴맛…멕시코·쿠바, 선인장 사용
"재료는 변해도 전통은 지켜"
1937년 옛 소련 시절, 스탈린의 명령으로 18만명에 이르는 고려인이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했다. 고려인들은 혹독한 날씨 속에서 밥·국과 함께 ‘짐치’로 불리는 김치로 배고픔을 견뎠다. 하지만 80년의 세월이 흐르며 김치맛은 달라졌다.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서 먹는 짐치는 한국 김치보다 더 짜고 매우며 단맛과 깊은 맛은 별로 없다. 지난 13~14일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세계김치연구소 주최로 열린 ‘김치학 심포지엄’에서는 이처럼 중앙아시아와 중국, 중남미로 전파된 김치의 변화사가 소개됐다.
◆짐치, 뿌리는 같지만 맛은 달라
김치는 몸에 좋은 유산균이 풍부한 대표적인 전통 발효 식품이다.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우리의 김장문화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갓 담근 김치는 산도가 pH6.5 정도로 특별한 맛이 없고 겉도는 맛이 난다. 하지만 이 단계가 지나 류코노스톡균과 웨이셀라균 같은 이형발효유산균과 탄산이 생성되는 적숙기에 들어가면 한국인이 선호하는 살짝 신맛과 함께 톡 쏘는 맛이 난다.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들이 한국에서와 똑같은 김치맛을 내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 재료 영향이 컸다. 한 예로 짐치 재료로 사용되는 카푸스타(배추)는 속이 꽉 차있지 않다. 배추 속잎은 겉잎 다음으로 김치맛을 좌우하는 미생물이 많이 사는 부위다. 짐치에 넣는 고추도 한국 고추보다 단맛이 없고 훨씬 더 맵다. 소금 역시 천일염이 아니라 짠맛과 함께 쓴맛이 강한 암염을 쓴다. 중앙아시아 지역 고려인의 김치를 연구한 백태현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인문대 교수는 “짐치는 더 맵고 상큼하고 단맛이 돌지 않는 등 김치 원형을 많이 잃었다”면서도 “현지 상황에 적응하며 독자적 재료와 제조 방법으로 한국 전통 식품 김치와 다른 짐치로서 독자적 지위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쿠바·멕시코서도 고수한 김치
김치는 비슷한 시기 중국과 중남미로도 퍼져나갔다. 이를 두고 유대인의 오랜 유랑 생활에 빗대 ‘김치 디아스포라(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로 흩어져 살던 유대인을 일컫는 말)’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중국 동북부와 연해주에 정착한 김치도 현지 영향을 받은 편이다. 옌볜 김치에는 발효를 촉진하는 젓갈이 들어가지 않는다. 옌볜 김치는 대신 속에 젠치(향채·고수) 씨를 갈아 넣는다. 한국의 김치가 단맛, 구수한 맛, 깊은 맛이 특징이라면 옌볜 김치는 아삭아삭한 맛, 특유의 향, 톡 쏘는 맛을 강조한다.
최민호 중국 옌볜대 인문사회과학원 교수는 “옌볜이 한반도보다 북쪽이라 오래 저장해두고 먹는 걸 선호하다 보니 빨리 발효되지 않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1900년대 초 쿠바와 멕시코의 애니깽(헤네켄·용설란) 농장 노동자로 팔려간 한인들 밥상에도 빠지지 않고 김치가 올랐다. 이민자들도 전통적인 김치 양념 대신 현지의 타바소스를 이용해 배추김치와 오이김치를 담갔다. 일부에선 실란트로(고수)로 깍두기를 만들고 래디시(빨간무)로도 김치를 담가 먹었다. 배추나 무를 구하지 못하면 선인장으로 김치를 담갔다.
◆김치맛 보존 과학으로 해결
최근 이들 지역에서도 한인 식당이 늘고 식재료 공급이 원활해지면서 한국의 김치맛을 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김치는 여전히 온도와 미생물, 염도에 따라 발효 과정에 영향을 받는 민감한 음식이다. 유통 중 발효가스가 차서 포장용기가 찢어지는 문제도 있다.
김치연구소는 공기 중 신선한 산소와 수분을 흡수하고 발효 중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외부로 내뱉으며 김치 향을 포장용기에 잡아두는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김치 신선함과 파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기술이다. 박완수 김치연구소장은 “김치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가 최근 김치 과학 연구에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김치는 몸에 좋은 유산균이 풍부한 대표적인 전통 발효 식품이다.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우리의 김장문화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갓 담근 김치는 산도가 pH6.5 정도로 특별한 맛이 없고 겉도는 맛이 난다. 하지만 이 단계가 지나 류코노스톡균과 웨이셀라균 같은 이형발효유산균과 탄산이 생성되는 적숙기에 들어가면 한국인이 선호하는 살짝 신맛과 함께 톡 쏘는 맛이 난다.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들이 한국에서와 똑같은 김치맛을 내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 재료 영향이 컸다. 한 예로 짐치 재료로 사용되는 카푸스타(배추)는 속이 꽉 차있지 않다. 배추 속잎은 겉잎 다음으로 김치맛을 좌우하는 미생물이 많이 사는 부위다. 짐치에 넣는 고추도 한국 고추보다 단맛이 없고 훨씬 더 맵다. 소금 역시 천일염이 아니라 짠맛과 함께 쓴맛이 강한 암염을 쓴다. 중앙아시아 지역 고려인의 김치를 연구한 백태현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인문대 교수는 “짐치는 더 맵고 상큼하고 단맛이 돌지 않는 등 김치 원형을 많이 잃었다”면서도 “현지 상황에 적응하며 독자적 재료와 제조 방법으로 한국 전통 식품 김치와 다른 짐치로서 독자적 지위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쿠바·멕시코서도 고수한 김치
김치는 비슷한 시기 중국과 중남미로도 퍼져나갔다. 이를 두고 유대인의 오랜 유랑 생활에 빗대 ‘김치 디아스포라(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로 흩어져 살던 유대인을 일컫는 말)’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중국 동북부와 연해주에 정착한 김치도 현지 영향을 받은 편이다. 옌볜 김치에는 발효를 촉진하는 젓갈이 들어가지 않는다. 옌볜 김치는 대신 속에 젠치(향채·고수) 씨를 갈아 넣는다. 한국의 김치가 단맛, 구수한 맛, 깊은 맛이 특징이라면 옌볜 김치는 아삭아삭한 맛, 특유의 향, 톡 쏘는 맛을 강조한다.
최민호 중국 옌볜대 인문사회과학원 교수는 “옌볜이 한반도보다 북쪽이라 오래 저장해두고 먹는 걸 선호하다 보니 빨리 발효되지 않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1900년대 초 쿠바와 멕시코의 애니깽(헤네켄·용설란) 농장 노동자로 팔려간 한인들 밥상에도 빠지지 않고 김치가 올랐다. 이민자들도 전통적인 김치 양념 대신 현지의 타바소스를 이용해 배추김치와 오이김치를 담갔다. 일부에선 실란트로(고수)로 깍두기를 만들고 래디시(빨간무)로도 김치를 담가 먹었다. 배추나 무를 구하지 못하면 선인장으로 김치를 담갔다.
◆김치맛 보존 과학으로 해결
최근 이들 지역에서도 한인 식당이 늘고 식재료 공급이 원활해지면서 한국의 김치맛을 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김치는 여전히 온도와 미생물, 염도에 따라 발효 과정에 영향을 받는 민감한 음식이다. 유통 중 발효가스가 차서 포장용기가 찢어지는 문제도 있다.
김치연구소는 공기 중 신선한 산소와 수분을 흡수하고 발효 중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외부로 내뱉으며 김치 향을 포장용기에 잡아두는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김치 신선함과 파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기술이다. 박완수 김치연구소장은 “김치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가 최근 김치 과학 연구에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