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여파로 중앙부처 상대 업무추진비 사용 어려워져
중앙부처, 지자체 공무원 만남 기피…지자체들 국비 확보 대책 마련 고심

강원도는 지난 7월 국비 예산 확보를 위한 업무 협의차 중앙부처를 방문하면서 지역 특산품을 챙겨 갔다.

협의 대상 공무원들에게 특산품을 선물하고 점심도 함께하다 보니 업무추진비 68만 원을 지출했다.

업무 협의차 유관기관을 방문할 때 기념품이나 특산품을 선물하는 관행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 시행 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방재정법에도 유관기관과 업무 협의를 하면서 기념품이나 음식을 제공할 때 업무추진비를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9월 28일 김영란법 시행 이후 기관 간 업무 협의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법 시행 초기 불필요한 만남으로 오해를 받고 싶지 않다며 지자체 공무원과의 만남 자체를 꺼리고 있다.

업무 협의를 위해 3만 원 이하 식사, 5만 원 이하 선물은 괜찮다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중앙부처 공무원과 약속 한 번 잡는 게 쉽지 않은 일이 돼 버렸다.

어렵게 만남이 성사돼도 식사자리는 피하고 기념품과 특산품 등 선물은 일절 가져오지 못하도록 사전에 신신당부한다.

업무추진비를 사용해야 할 자리가 줄자 내년도 예산에서 업무추진비를 줄여 편성하는 지자체도 속속 늘어난다.

경기도 부천시는 김영란법 시행을 맞아 내년 업무추진비를 행정자치부 편성 기준액의 80% 이하로 편성하기로 했다.

이로써 부천시 업무추진비는 올해 13억1천만 원에서 내년 10억3천만 원으로 21% 감소한다.

부천시는 행자부 기준액의 100%에 가까운 예산을 업무추진비로 편성해 왔지만, 김영란법 시행으로 업무 추진을 위한 회의·간담회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해 업무추진비도 줄였다.

시는 업무추진비를 저녁 시간과 휴일에 집행하거나 50만 원 이상을 쓸 경우 반드시 사유와 근거에 대해 미리 결재를 받도록 하는 '사전 품의제'를 엄격히 준수하도록 했다.

강원도 역시 올해 15억6천만에서 내년 14억2천만 원으로 업무추진비를 줄였다.

인천시는 인구 300만 명 돌파로 내년에는 국·과가 늘어 업무추진비 수요도 늘어나지만 12억5천만 원 선에서 업무추진비를 동결하기로 했다.

경기도 고양시(10억 원)·파주시(6억 원)·포천시(5억 원)도 업무추진비 삭감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추이를 살피고 있다.

업무추진비 삭감은 관행적으로 지출해 온 접대성 비용을 줄임으로써 지자체 재정 운용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충북도 관계자는 "일단 내년 업무추진비를 올해 수준으로 동결할 계획이지만 업무추진비가 남으면 민생과 관련한 다른 사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전처럼 업무추진비를 사용하기 어려워진 지자체 입장에서는 국비 확보 전략에 비상이 걸렸다.

강원도는 중앙부처와 공동으로 주최할 수 있는 워크숍·세미나 등을 유치해 유대를 강화한다는 전략을 세웠지만, 공감대 형성이 쉽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충북도는 주요 사업의 예산 편성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예전보다 더 자주 중앙부처를 방문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강원도 관계자는 "부정한 청탁도 아니고 중앙부처 사무실을 찾아가 사업을 설명하고 예산을 부탁해야 하는데 아예 만나주질 않으니 국비 확보 업무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방의회도 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업무추진비 사용에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광역의회 의장은 연간 5천40만∼6천360만 원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할 수 있는데, 예전처럼 지역 주민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행사나 간담회를 열었다가는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업무추진비는 기관장과 간부들이 업무와 시책을 추진하는 데 사용하는 비용을 일일이 예산에 반영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편성된 예산이다.

이는 이재민·소외계층 격려, 학술·문화예술·체육 유공자 격려, 현장 부서 근무자 격려, 업무 추진 유관기관 협조, 시책 홍보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사용된다.

(강종구 심규석 임보연 우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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