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옥 회장(왼쪽)과 한경희 대표가 지난 1일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 앞에서 WCD 운영 방안에 대해 논의하며 함께 걷고 있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손병옥 회장(왼쪽)과 한경희 대표가 지난 1일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 앞에서 WCD 운영 방안에 대해 논의하며 함께 걷고 있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지난 1일 세계여성이사협회(WCD:Women Corporate Directors) 한국지부가 출범했다. WCD는 코카콜라 P&G JP모간 등 글로벌 상장기업을 포함해 각국 기업 이사회에서 활동하는 여성 리더들의 모임이다. 전 세계 70여개국 1만여개 기업의 고위 관리직 여성 350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일본과 한국에만 지부가 없다가 3년 전 일본에 생겼고 OECD 국가 중 마지막으로 한국지부가 이번에 설립됐다. 설립을 주도한 여성 경영인은 손병옥 푸르덴셜생명 회장과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다. 이화여대 선후배 사이인 두 경영인은 등기이사는 고사하고 일반 여성 임원도 많지 않은 한국 기업 환경을 바꿔보자며 1년 전 손을 잡았다. 초대 공동대표를 맡은 두 사람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은 국가일수록 남성들의 행복지수도 더 높다”며 “앞으로 할 일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WCD는 어떤 단체입니까.

(손병옥 회장)“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내 여성 멤버들이 참여하는 단체입니다. 여성 등기이사와 사외이사 중심입니다. 선진국으로 인식되는 OECD 국가 중 한국만 없었습니다. 개발도상국인 몽골과 나이지리아 등에도 있는데 말입니다.”

(한경희 대표)“사실 국내에 여성 임원이 별로 없잖아요. 여성의 이사회 진출을 독려하고 경영진 내 여성 임원의 입지를 넓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한국지부는 어떻게 설립됐나요.

(한 대표)“한국 여성 기업인 대표로 해외 행사에 몇 차례 참석한 적이 있는데 3년 전쯤 (WCD 미국 본부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회사 일이 바빠서 망설이다가 작년에야 손 회장님께 도움을 청했죠. 지난해 5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WCD 총회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국내 여성 임원 및 이사 현황을 파악했고, 약 40명의 창립 멤버를 모았습니다.”(WCD에는 유순신 유앤파트너즈 대표, 신미남 두산퓨어셀 대표, 이수영 코오롱워터앤에너지 대표,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등이 참여한다)

(손 회장)“12명으로 시작한 일본지부는 아베 정권의 친여성 정책에 힘입어 회원수가 100여명으로 늘었습니다.”

[월요인터뷰]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설립한 손병옥 회장·한경희 대표
▷두 분이 원래 인연이 있었나요.

(한 대표)“WCD 설립을 위해 제가 무작정 연락을 드렸습니다. 알고 보니 대학(이화여대) 선배님이더라고요.”(손 회장은 영문학과 70학번, 한 대표는 불문학과 83학번이다.)

▷WCD는 기존 여성 임원 모임과 어떻게 다릅니까.

(손 회장)“이미 2007년에 여성 임원 모임인 WIN(Women In Innovation: 혁신 여성들)이 생겼죠. WCD는 더 경험 많고 결정권을 가진, 시니어급 최고 임원진을 키워내자는 게 목표입니다.”

(한 대표)“여성에게 임원이나 이사직을 무조건 주자는 것은 아닙니다. 여성 자원을 잘 활용해 기업과 국가 발전을 가속화하자는 취지입니다.”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왜 중요합니까.

(한 대표)“1962년에 설립된 비영리단체 카탈리스트가 2004년부터 연구해온 자료에 따르면 여성 이사나 임원 비율이 높을수록 기업의 재무 성과가 좋다고 해요. 미국 경제잡지인 포천이 선정한 200대 기업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죠. 세계적인 기업은 여성 임원 비율이 최고 30~40%에 달해요. 이런 조사 결과는 여러 연구에서 비슷하게 나옵니다. 여성 고위 임원의 존재는 기업 가치와 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손 회장)“기업 내 다양성,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 수익성을 개선하는 데 여성 임직원의 역할이 큽니다. 여성 친화적인 정책,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가정 중심적인 문화를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국내 여성 이사의 비율은 어떻습니까.

(한 대표)“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 713곳의 등기임원 4529명 중 여성은 94명(한국기업지배구조원, 2015년)으로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은 2% 남짓입니다. 여기엔 오너 가족 출신이 상당수 포함돼 있어요.”

(손 회장)“직장생활 밑바닥부터 올라온 여성 이사는 1% 미만이에요. 아직도 일부 대기업 오너는 여성의 업무 능력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듣고 있는데 오너가(家) 딸들에게도 그런 의문을 가질까요.”

▷WCD 활동 계획을 소개해 주세요.

(한 대표)“남성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임원을) 시킬 여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고위직 여성 리더가 더 나올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고 교육과 네트워킹을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준비된 여성을 추천할 수 있도록 말이죠. 우선 공기업을 중심으로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을 30%까지 끌어올리는 노력을 펼칠 계획입니다.”

(손 회장)“자연스럽게 저출산, 저성장, 고령화 문제도 풀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왜 공기업부터 30%입니까.

(한 대표)“지도층 남성들은 이 얘기를 들으면 깜짝 놀라더라고요.(웃음) 큰 회사들도 등기이사는 10명 내외니까 사실상 여성이 한두 명 진출하는 셈이죠. 그 정도면 실질적인 변화가 있을 거예요. 공기업 이사직이 남성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잖아요. 공공 부문부터 변화를 불러오면 민간 영역으로 확산되겠죠.”

(손 회장)“스웨덴 등 북유럽도 과거에는 여성의 최고위직 진출 비율이 한 자릿수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법제화와 가이드라인을 통해 여성 비율이 급증한 거죠. 우리도 사회적인 가이드라인 등을 만드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국내 여성 인재 풀은 어떻습니까.

(한 대표)“해외에서는 이사를 뽑을 때도 최고경영자(CEO)를 구하듯이 분야별 전문가 인력 풀을 놓고 엄격하게 선발해요. WCD가 임원급 여성 인재 DB 구축에 큰 관심을 두는 이유입니다.”

(손 회장)“임원급 이상 여성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그동안의 경험과 교육 프로그램을 총동원할 생각입니다. 고품질 여성 자원을 도저히 낭비할 수 없도록 말이죠.”

▷현재 기업 내 여성의 상황은 어떤가요.

(손 대표)“이제는 남성 직장인들도 가정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해졌습니다. 여성 직장인도 많아졌고요. 하지만 아직도 여성의 출산과 육아를 비용으로 보는 시선이 남아 있죠. 제가 아는 한 젊은 여성은 최근 둘째를 출산했는데 ‘회사 눈치가 보여서 셋째는 이직해서 낳아야 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한 대표)“고위직에 진출하는 여성이 너무 없어요. 그들이 비전을 보여주고 경험과 용기를 주면 아래에서도 더 잘 성장할 것입니다.”

▷여성 직장인을 위해 조언을 해주세요.

(손 회장)“애를 낳았다거나 자녀가 입시생이라고, 혹은 가족 중 누가 아프다고 대뜸 ‘회사를 관둬야 하나’라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여성들은 이런 일을 겪으면 일단 퇴사를 고민해요. 저돌적으로 버티면서 어떻게 하면 사회생활을 지속할지 고민해야죠. 또 여성은 교류의 중요성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회사 안에서 동료나 상사와 더 소통하고 조직 밖으로도 눈을 돌려 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한 대표)“저녁과 주말에 약속을 잡지 않고 사업을 하는 게 쉽진 않았습니다. 남성들처럼 모여서 술 한잔 하는 것도 주부에겐 어렵습니다. 대신 무조건 회사 업무를 잘해야겠죠.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어야 합니다.”

■ 손병옥 회장은…

손병옥 푸르덴셜생명 회장(64)은 1974년 체이스맨해튼은행 서울지점에 입사한 뒤 지난해 금융업계 최초로 푸르덴셜생명 이사회 의장 겸 회장이 됐다. 네 번의 경력단절을 겪으며 42년간 이어온 경력이다. 그에겐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붙는다. 금융업계 여성 최초 상무, 여성 최초 부사장에 이어 2011년 여성 최초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지난해 CEO에서 물러난 뒤 그는 이사회를 이끌며 경영진에 조언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창업자나 ‘낙하산’이 아니라 샐러리우먼 출신으로 직장 여성들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난치병 어린이 등을 후원하는 한국메이크어위시(Make a Wish)재단 이사장직도 맡고 있다. 슬하에 딸 둘이 있다.

■ 한경희 대표는…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53)는 국내 중소·중견기업계의 대표적인 여성 벤처창업자로 꼽힌다. 국제올림픽위원회, 미국 라디슨호텔, 무역회사 직원을 거쳐 1998년 짧은 공무원(교육행정사무관) 생활을 한 뒤 이듬해 회사를 세웠다. 국내 최초로 살균스팀청소기를 발명했고 스팀다리미, 가위칼 등 소형 가전과 생활용품을 주로 개발·생산하고 있다. 여성 기업인으로 정부의 여러 자문회의와 위원회에 참여했다. 가족으로 남편과 아들 둘이 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