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천섭 오리온식품기계 사장이 소형 장난감 기차를 이용한 음식배달 시스템을 설명하고 있다. 김낙훈 기자
엄천섭 오리온식품기계 사장이 소형 장난감 기차를 이용한 음식배달 시스템을 설명하고 있다. 김낙훈 기자
“칙칙폭폭. 이번에 도착할 요리는 참치초밥입니다.”

"백화점 초밥 기계 80% 공급…미국·영국 등 10개국 수출"
경적을 울리며 장난감 기관차가 달린다. 그 뒤 트레일러에는 접시에 담긴 참치초밥 김초밥 새우초밥 등이 실려 있다. 서울 신도림동 오리온식품기계가 개발 중인 제품이다. 이 회사에는 재미있는 제품이 가득하다.

엄천섭 사장은 기업인이자 발명가다. 엄 사장은 “지난 30년 동안 개발한 기계가 100종이 넘는다”고 말했다. 충무김밥성형기, 초밥성형기, 밥혼합기, 김밥제조기, 사각밥 수동성형기, 김밥절단기 등이 대표적이다. 엄 사장은 “그중 효자 상품은 20%쯤 된다”며 “간판 제품은 컨베이어를 활용한 회전초밥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손님들이 앉은 자리에서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컨베이어 시스템에 초밥접시를 놓아 회전시키는 장치다.

"백화점 초밥 기계 80% 공급…미국·영국 등 10개국 수출"
엄 사장은 “신세계 현대 롯데 등 국내 백화점 음식코너의 회전초밥 시스템은 우리가 80%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제품을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독일 영국 등 10여개국에 수출하기도 했다.

엄 사장은 “일본 제품에 비해 가격이 30% 수준에 불과한 데다 컨베이어가 코너를 돌 때 훨씬 부드럽고 소음도 적어 해외에서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김밥을 한꺼번에 10줄 이상 자를 수 있는 김밥절단기가 그 뒤를 잇는 효자 상품이다.

충북 단양 출신인 엄 사장은 지방의 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나왔다. 뭔가 만들기를 좋아하는 그의 꿈은 ‘공장 운영’이었다. 처음엔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정해진 일 외에는 배울 수 없었다. 다양한 업무를 배우겠다며 사직하고 서울 양평동의 중소기업으로 옮겼다. 그 뒤 선반 밀링 용접 등의 일을 하면서 현장 경험을 쌓았다. 사우디아라비아 건설근로자로 나가 창업 자본을 모은 뒤 1986년 서울 목동에서 창업했다. 지인의 공장 한쪽에서 선반 한 대로 쇠 깎는 일을 시작했다.

외환위기가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받을 어음’이 부도나면서 어려움을 겪었고 ‘나만의 제품’을 개발해 현금 거래만 하기로 했다. 서울 신길동 김밥 공장에서 밤새 수천 줄의 김밥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김밥절단기를 개발했다. 그 뒤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그는 호기심이 많았고 기계를 개발하는 재능이 있었다. 다양한 기계를 다뤄봤고 틈틈이 해외 전시회에 참가해 아이디어 제품을 눈여겨봤다. 한 번 납품한 기계에 대해선 애프터서비스는 물론 사전점검도 해줬다. 고장 나기 전 미리 부품을 교환해줬고 이런 노력으로 신뢰를 쌓자 단골이 늘었다. 다양한 ‘현장 경험’과 ‘호기심’,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경청’이 신제품 개발의 원동력이 된 셈이다.

그는 요즘 두 가지 제품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나는 고객이 자리에서 터치패널로 음식을 주문하면 컨베이어 시스템을 통해 배달하는 장치다. 또 하나는 장난감 소형 기관차가 음식을 싣고 기적을 울리며 요리를 배달하는 장치다. 기관차는 레일을 통해 전류를 받아 움직이며 안내방송과 기적소리까지 낼 수 있다.

엄 사장은 “인생은 즐거워야 하고 사업도 마찬가지”라며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는 사물인터넷을 결합한 제품이 대세를 이루는 만큼 이를 접목한 음식 관련 기계 개발에도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