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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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에서 이자가 없는 전환사채(CB)를 발행하는 상장사가 늘고 있다.

상장사 입장에서는 이자 부담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기존 주주들은 CB 투자자들이 주식 전환에 나설 경우 지분 가치가 희석돼 손실을 볼 수 있다.

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에이티젠은 지난달 25일 3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이 전환사채는 표면과 만기 이자율이 모두 0%인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무이자 전환사채 발행이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달 에이티젠 다날 아이원스 텔콘 크루셜텍 포티스 에이치엘비생명과학 가온미디어 등 8곳이 이자가 없는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작년 8월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당시에는 안국약품 인터지스 한양하이타오가 무이자 전환사채를 발행했었다. 지난달에는 오킨스전자 동성제약 행남자기(2회)가 이자 없이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기업 입장에서 무이자 전환사채는 효율적인 자금 조달 방법이다. 은행권 대출과 달리 이자 부담이 없어서다. 뿐만 아니라 재무재표상 부채로 반영되는 전환사채는 주식으로 전환하면 자본으로 바뀌게 된다. 이자가 없는 전환사채의 경우 대부분 주식 전환이 주목적이다.

이자 수익이 없어 투자자에게 불리하지만 무이자 전환사채 발행이 늘어나는 것은 메자닌(Mezzanine) 펀드가 인기를 끌면서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메자닌 펀드는 채권과 주식의 중간 성격을 띤 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에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주가가 오를 때는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이익을 얻는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메자닌 펀드가 꾸준히 연 10% 안팎의 수익을 내면서 투자자금이 몰리고 있다"며 "한국형 헤지펀드들도 메자닌 투자에 나서면서 메자닌 펀드와 헤지펀드들이 앞다퉈 투자처를 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초저금리가 지속되자 이자 수익 보다는 주식 전환으로 차익을 추구하는 투자 수요가 늘고 있다"며 "이러한 추세가 이자 부담을 낮춰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과 맞물리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말 기준 메자닌 펀드 설정액은 약 9236억원으로, 올해 초(약 7230억원) 보다 27.75% 증가했다. 지난해 연초 설정액은 5965억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말 이후 설정액이 크게 늘어난 헤지펀드들도 메자닌 투자에 나서고 있다.

최근 에이티젠, 다날 등은 펀드들을 대상으로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자 없는 전환사채 발행이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를 희석시키는 등 부정적 요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무이자 전환사채는 통상 일반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기업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라며 "주식으로 전환될 경우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 희석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당 사채의 주식 전환 청구가 이뤄지면 그에 따른 전환 물량과 차익 실현 매물 부담을 주주가 떠안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황 연구원은 "이자가 없는 전환사채 발행은 해당 기업 주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전환 청구가 진행되는 기간동안 지속적으로 주가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상재 한경닷컴 기자 sangj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