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부처 할거주의 또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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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정권 말기가 왔나 보다. 이번에도 어김없다. 또다시 관료들의 ‘영역전쟁’이 시작됐다. 학회들이 정부 조직 개편을 들먹인다는 건 다음 정권에 대비한 부처별 용역 발주가 시작됐다는 얘기다. 행정학자들의 움직임이 빨라진 것도 그들의 대목이 찾아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당장 산업통상자원부와 해양수산부가 해양에너지 관할권을 놓고 벌이는 신경전이 그렇다. 포문을 연 쪽은 부처 소멸을 경험한 적 있는 해수부다. ‘해양수산발전 기본법’ 개정을 통해 조력·파력발전 등 해양에너지를 관장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산업부는 해양에너지는 소관 법률 ‘신재생에너지법’에 명시돼 있다며 즉각 반발한다.
첨예한 부처간 신경전
“바다 업무는 모두 해수부가 관장해야 한다”는 해수부(그럼 육상 업무는 모두 국토교통부 것이냐는 반론도). “산업 육성, 에너지는 절대 내줄 수 없다”는 산업부(에너지정책 신뢰도가 추락한 마당 아니냐는 비판도). 누가 승자가 될까.
그러나 이건 약과다. 통상조직을 둘러싼 산업부와 외교부 간 다툼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형국이다. 어떤 통상학회는 통상이 산업부로 넘어가면서 별 볼일 없게 됐다고 주장한다. 언론에서 통상외교가 길을 잃었다는 비판이 나오자 이때다 하고 들고일어난 것이다.
현 정부가 조직 개편의 꽃이라고 했던 미래창조과학부는 또 어떤가. 미래부는 출범부터 ‘한 지붕 두 가족’이었다는 지적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의 2차관 쪽은 ‘정보통신부’ 부활을 기정사실로 여긴다고 한다. 창조경제(기획재정부가 장악)·과학기술(옛 과학기술부 관료 일부 잔존) 등 1차관 쪽은 정권이 바뀌면 창조경제는 날아간다고 치고 과학기술이라도 잡아 권토중래를 노린다는 소문이다.
과학기술계 일각에서는 다음 정부 때는 아예 기재부로 들어가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바에야 차라리 예산권을 쥔 힘 있는 부처에 붙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이에 다른 쪽에서는 그래도 옛날의 과기부 시절로 되돌아가자고 한다.
본질은 관료제 위기다
기재부가 서비스산업 총괄 부처를 자처한 점도 예사롭지 않다. 기재부는 ‘서비스 연구개발(R&D)’을 들고나왔다. 앞으로 산업융합이 가속화되면 서비스와 관련되지 않은 R&D가 어디 있겠나. 관가에서는 기재부 의도를 놓고 온갖 설들이 난무한다.
현 정부가 손을 댄 행정자치부와 인사혁신처는 물론이고 국민안전처 등이 다음 정부에서 안전할지도 의문이다. 이 나라는 언제까지 정부 조직을 흔들어댈지 예측하기조차 어렵다. 관료들에게만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어차피 정치가 가만두지 않을 게 뻔하니까. 조직을 뗐다 붙였다 한 정부가 그다음 정부는 조직을 건드리지 말라고 할 염치가 있겠나.
죽어나는 건 국민이요, 기업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또 얼마나 많은 5개년 계획이 쏟아질까. 벌써부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하소연이 들린다. 이쯤되면 한국 관료제는 전통적 효율성을 상실한 것이다. 더구나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성 대응력을 갖춘 것도 아니다.
양심적인 행정학자는 고백한다. 기존 시스템으로 더는 굴러가기 어렵다고. 정부 조직이 아니라 정부 역할에 일대 변화가 요구된다는 얘기다. 4차 산업혁명이 밀려온다고? 이대로 가면 한국에는 ‘산업혁명’이 아니라 ‘산업재앙’이 닥쳐올 수도 있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당장 산업통상자원부와 해양수산부가 해양에너지 관할권을 놓고 벌이는 신경전이 그렇다. 포문을 연 쪽은 부처 소멸을 경험한 적 있는 해수부다. ‘해양수산발전 기본법’ 개정을 통해 조력·파력발전 등 해양에너지를 관장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산업부는 해양에너지는 소관 법률 ‘신재생에너지법’에 명시돼 있다며 즉각 반발한다.
첨예한 부처간 신경전
“바다 업무는 모두 해수부가 관장해야 한다”는 해수부(그럼 육상 업무는 모두 국토교통부 것이냐는 반론도). “산업 육성, 에너지는 절대 내줄 수 없다”는 산업부(에너지정책 신뢰도가 추락한 마당 아니냐는 비판도). 누가 승자가 될까.
그러나 이건 약과다. 통상조직을 둘러싼 산업부와 외교부 간 다툼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형국이다. 어떤 통상학회는 통상이 산업부로 넘어가면서 별 볼일 없게 됐다고 주장한다. 언론에서 통상외교가 길을 잃었다는 비판이 나오자 이때다 하고 들고일어난 것이다.
현 정부가 조직 개편의 꽃이라고 했던 미래창조과학부는 또 어떤가. 미래부는 출범부터 ‘한 지붕 두 가족’이었다는 지적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의 2차관 쪽은 ‘정보통신부’ 부활을 기정사실로 여긴다고 한다. 창조경제(기획재정부가 장악)·과학기술(옛 과학기술부 관료 일부 잔존) 등 1차관 쪽은 정권이 바뀌면 창조경제는 날아간다고 치고 과학기술이라도 잡아 권토중래를 노린다는 소문이다.
과학기술계 일각에서는 다음 정부 때는 아예 기재부로 들어가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바에야 차라리 예산권을 쥔 힘 있는 부처에 붙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이에 다른 쪽에서는 그래도 옛날의 과기부 시절로 되돌아가자고 한다.
본질은 관료제 위기다
기재부가 서비스산업 총괄 부처를 자처한 점도 예사롭지 않다. 기재부는 ‘서비스 연구개발(R&D)’을 들고나왔다. 앞으로 산업융합이 가속화되면 서비스와 관련되지 않은 R&D가 어디 있겠나. 관가에서는 기재부 의도를 놓고 온갖 설들이 난무한다.
현 정부가 손을 댄 행정자치부와 인사혁신처는 물론이고 국민안전처 등이 다음 정부에서 안전할지도 의문이다. 이 나라는 언제까지 정부 조직을 흔들어댈지 예측하기조차 어렵다. 관료들에게만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어차피 정치가 가만두지 않을 게 뻔하니까. 조직을 뗐다 붙였다 한 정부가 그다음 정부는 조직을 건드리지 말라고 할 염치가 있겠나.
죽어나는 건 국민이요, 기업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또 얼마나 많은 5개년 계획이 쏟아질까. 벌써부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하소연이 들린다. 이쯤되면 한국 관료제는 전통적 효율성을 상실한 것이다. 더구나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성 대응력을 갖춘 것도 아니다.
양심적인 행정학자는 고백한다. 기존 시스템으로 더는 굴러가기 어렵다고. 정부 조직이 아니라 정부 역할에 일대 변화가 요구된다는 얘기다. 4차 산업혁명이 밀려온다고? 이대로 가면 한국에는 ‘산업혁명’이 아니라 ‘산업재앙’이 닥쳐올 수도 있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