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할 수 없었던" 후보 트럼프, 부정선거론으로 `불복' 밑밥 깔아
노동계층백인과 남·서부주 분노에 불복선동 더해지면 "생각할수 없었던" 내전상황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에 부정이 있었다며 선거 결과에 불복해 일부 주에서 연방정부 기관 건물들이 점거당하고 주 경찰이나 방위군이 농성자 해산 명령을 거부하며 연방판사 차량이 폭탄 공격을 받는 것과 같은 내전상황이 벌어진다?

지금까지 상식으론, 미국민은 물론 미국에 호감을 갖지 않은 나라들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 폴리시의 칼럼니스트 토마스 릭스는 8일(현지시간) '11월의 불길: 트럼프 지지자들이 저항에 나선다면?'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적은 표차로 졌을 경우 "그럴듯한" 내전 시나리오를 소개했다.

"생각할 수 없었던" 후보인 트럼프가 대선 후 "생각할 수 없었던" 행보를 할 것이라는 불안감은 릭스 뿐 아니다.

스티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석좌교수는 미국에서 발행되는 코리아데일리 7일 기고문에서 "등골을 가장 서늘하게" 하는 일로 트럼프와 보좌진이 부정선거 주장을 펴는 점을 들었다.

'클린턴 대통령'의 정당성뿐 아니라 민주주의 기반인 선거 과정 자체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보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도 지난 2일 트럼프가 설사 큰 표차로 져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 밑밥을 이미 깔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최근 내세우기 시작한 '부정선거' 주장은 직접적인 투표 부정 외에도 후보 경선 단계에서부터 여론조사와 언론 보도 등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떨어뜨리기 위한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신문은 '주목 경제의 달인'인 트럼프가 대선 패배 후에도 부정선거론으로 계속 무대 조명을 받으면서 이를 돈벌이에 활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릭스의 내전 시나리오보다는 불길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무시하지 못할 규모의 지지자들이 그의 부정선거 주장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신문은 내다봤다.

트럼프에 대한 이런 종류의 불안감이 널리 자리 잡고 있음은 트럼프가 9일 유세에서 총기 소유와 휴대 권리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2조 지지자들에게 클린턴의 생명을 위협하도록 사주한 게 아니냐며 일고 있는 논란이 방증한다.

트럼프는 힐러리가 총기 규제를 위해 수정헌법 2조를 폐지하려 한다면서 "아마도 수정헌법 지지자들이 있긴 하지만…"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진영은 제2조가 폐지되지 않도록 집단적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호소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대통령 클린턴'을 향해 무기를 사용하라고 선동한 것인지, 정치적 행동을 부추긴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워싱턴 포스트)며 모호한 발언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AP통신은 트럼프 바로 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을 포함해 일부 지지자들이 트럼프의 발언에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은 것으로 봐선 트럼프 진영의 해명과 다르게 해석한 사람도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트럼프가 크게 지든 아깝게 지든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은 트럼프의 오랜 측근 로저 스톤이 더욱 부추겼다.

그는 "광범위한 투표 부정이 있다.

트럼프가 우선 해야 할 일은 이 문제를 지속해서 제기하는 것"이라며 "투표 부정이 있다면 선거는 불법이고 당선자도 불법이며 그에 따라 우리는 헌정 위기와 광범위한 시민 불복종을 맞게 되고 정부는 더이상 정부가 아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스톤은 더 나아가 "트럼프는 승자의 취임은 말뿐이 될 것임을 통고해야 한다"고 말하고 심지어 "시민 불복종이라 함은 그냥 폭력이 아니라 피웅덩이(bloodbath)를 말하는 것"이라고까지 극언했다.

릭스는 트럼프의 부정선거론이 지지자층인 "노동자 계층 백인과 지역적으로 남부 및 서부"의 분노, 불신과 결합할 때 "지역적 거부(Regional Refusal)"를 거쳐 내전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고 봤다.

그 전조는 이미 지난 1월 오리건주에서 반연방정부 무장 시위대가 자신들의 목장을 산불로부터 지키기 위해 국유지에 방화한 혐의로 징역형을 받은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연방정부 시설들을 장기 점거한 사건에서 나타났다는 게 릭스의 견해다.

연방정부와 맞붙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던 점증하는 극단적인 반정부 세력이 생각을 실행에 옮긴 사건으로, 이웃 서부지역 주들의 일부 의원들이 이들에 찬동하고 나서고 "이렇다 할 공권력 집행도 없이" 수주 간 끌었다는 사실은 연방정부와 무력충돌도 불사하려는 극단적인 반정부 세력이 얼마나 확산됐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미국의 영토나 사법관할권이 미치는 지역에서 2인 이상이 무력으로 미국 정부를 전복하거나 파괴하거나 전쟁을 시작하거나 법 집행을 방해하거나 막거나 지연하거나 미국 정부의 재산을 빼앗거나 점령하거나 소유하려고 모의할 경우 내란 음모죄로 2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법률 조항에 따르면 미국의 상황은 이미 내란 음모를 넘어선 단계라고 릭스는 비관적으로 봤다.

그는 이미 지난 3월 제시했던 이런 시나리오를 지난 8일 기고문에서 더욱 세분화해 4가지로 설명했다.

그중 남북전쟁의 발단이 된 섬터 요새 전투에서 이름을 딴 '섬터 요새 2017'이라는 시나리오는 대선 이튿날인 11월 9일 트럼프가 선거 결과에 "의혹"을 제기하고 "대법원 아니라 그 너머까지 끌고 가겠다"고 다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흘 후인 12일 펜실베이니아와 버지니아주가 트럼프 측이 제기한 선거소송을 각하하자 트럼프는 13일 선거 결과를 "불법"으로 규정한다.

이어 18일 공화당 텃밭인 애리조나주와 텍사스 주지사들이 선거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20일 루이지애나, 조지아, 미시시피주가 투표 재검표 방침을 밝히고 급기야 22일엔 노스캐롤라이나주가 흑인이 다수인 카운티들의 투표를 폐기하기 시작한다.

12월 8일 트럼프는 클린턴의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200만인 워싱턴 대행진" 계획을 발표하고 14일 아이다호주 여러 카운티가 "이른바 대통령 당선인 클린턴의 권위를 법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취임일까지 13개 주의 농촌 지역 카운티 대부분이 이에 가담한다.

20일 클린턴 대통령 취임식은 취임식장인 의사당을 포위한 수천수만 대의 오토바이 굉음에 파묻힌다.

통일된 검정색 옷차림의 이들은 '미국 수복 민병대(ARM)'를 자처한다.

마침내 이듬해 1월 22일 댈러스에 있는 연방법원에서 폭탄이 터지고 이틀 뒤엔 1850년대 노예제 지지세력과 반대 세력 간 유혈 충돌이 벌어졌던 캔자스주의 최대 도시 위치토에서 ARM이 연방법원과 국세청 등 연방정부 건물들을 점거하지만, 캔자스 주립 경찰은 이들에 대한 해산조치 명령을 거부한다.

이에 클린턴 대통령은 캔자스 주 방위군을 연방군으로 편입, 동원령을 내리지만 27일 약 40%가 동원령에 따르지 않고 트럼프는 "이 영웅들을 따르라"고 ARM을 선동한다.

29일 연방 대법원이 트럼프 측의 모든 소송을 각하하자 2월 1일 앨라배마주에선 연방판사의 차량에 대해 폭탄 공격이 가해진다.

사흘 후 사우스 캐롤라이나주가 "연방정부와의 미래 관계"를 검토하기 위한 주 대회 소집 방침을 발표한다.

트럼프 지지층의 불복 불길이 거세지 않고 중앙정치권이 현명한 대응을 하는 '새잎' 시나리오에선 공화당의 잿더미에서 중도를 표방하는 '공동 의식(Common Conscience)'이라는 제3당이 출현한다.

관용과 타협, 질서회복을 내세운 이들에 민주당 이탈파도 합류해 2017년 5월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 제프 베저스 등이 기부한 정치자금으로 전당대회를 열고 2018년 중간선거에서 모든 하원 지역구에 후보를 내기로 한다.

이 시나리오는 2019년 1월 새로 개원한 하원에서 민주당 201석, 흑인과 히스패닉 당원이 거의 없이 순백당이 된 공화당 130석에 제3당인 '공동 의식' 당이 109석을 차지해 캐스팅 보트를 쥐는 것으로 끝난다.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y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