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자산업 '심장' 겨냥 …중국, 반도체·LCD·TV 융단폭격
중국 전자업체들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부품부터 TV 같은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인수합병(M&A)과 신공장 건설에 거액을 쏟아붓고 있다. 더 이상 미래의 위협이 아니라 “당장 한국의 주력 산업을 빼앗아갈 기세”라는 게 전자업계의 우려다. 한국도 3차원(3D) 낸드플래시 메모리, OLED(유기발광다이오드)와 같은 신기술로 극복하려 하고 있지만 경쟁 심화에 따른 수익률 하락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M&A로 덩치 키우는 중국 반도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칭화유니그룹이 반도체 업체 XMC를 인수하기로 했다고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칭화유니는 부동산 재벌인 자오웨이거 회장이 이끄는 곳으로 작년부터 미국 메모리 반도체 회사인 마이크론과 하드디스크(HDD)업체인 웨스턴디지털 인수를 잇달아 추진했지만 미국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XMC는 지난 3월 약 27조원을 투자해 후베이성 우한에 중국 최초로 3D 낸드 공장 건설을 시작한 업체다. WSJ는 새로 설립될 지주회사가 XMC 지분 50%를 갖고, 자오 회장이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자오 회장은 올초 인터뷰에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인) 삼성전자를 따라잡겠다”며 “이를 위해 300억달러(약 34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칭화유니는 미국 기업 인수를 통한 메모리 반도체 산업 진출이 막히자 자국 내에서 규모를 키우기로 한 것으로 관측된다. 메모리 반도체는 통상 규모가 커야 생산 단가를 낮출 수 있다. WSJ는 인수 추진 배후에 중국 정부가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한국산 메모리 반도체를 가장 많이 사는 나라다. 이를 자급하게 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초대형 투자 나선 중국 디스플레이

중국 디스플레이업계에선 초대형 투자가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중국 매일경제뉴스는 최근 차이나스타(CSOT)가 500억위안(약 8조5000억원)을 투자해 올해 말 11세대 LCD(액정표시장치) 공장 건설을 착공한다고 보도했다. 11세대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CSOT는 2019년부터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같은 중국 업체인 BOE는 2018년 3분기 양산을 목표로 작년 말부터 10.5세대 LCD 공장을 짓고 있다. 여기에 들어가는 돈은 400억위안이다.

이들 공장이 완공되면 8.5세대에 머물러 있는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는 치명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LCD 공장은 유리기판이 커질수록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8.5세대 공장에서 나오는 유리기판 한 장으로 만들 수 있는 TV 패널은 46인치 기준 8대다. 하지만 BOE의 10.5세대 공장에서는 같은 인치 14대, CSOT의 11세대 공장에선 15대를 뽑아낼 수 있다. 그만큼 싸게 생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LG와 삼성디스플레이는 최근 3~4년간 LCD 공장을 하나둘 폐쇄하고 OLED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한국기업 수익률 저하 불가피”

중국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러스는 미국 TV업체 비지오를 20억달러에 인수한다고 26일 발표했다. 비지오는 2002년 대만계 미국인 왕웨이가 미국에서 세운 TV업체로 중국, 멕시코 등에서 제조한 중저가 TV를 수입해 판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올 1분기 미국 TV 시장에서 17.8% 점유율로 삼성전자(37.1%)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LG전자, 소니를 훨씬 앞선다. 올 1월 슈퍼볼에 광고를 하기도 했다.

러스는 3년 전 TV 시장에 진출한 신흥 업체지만 지난 4월 71만대를 팔아 중국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 콘텐츠를 사면 TV를 저가 혹은 무상으로 주면서 점유율을 빠르게 늘렸다. 콘텐츠 판매가 주 수입원이어서 ‘중국판 넷플릭스’로 불린다. 자웨팅 러스 최고경영자(CEO)는 “콘텐츠와 TV를 엮어 세계 최대 TV업체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미국 시장에서 많은 수익을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러스가 비지오 브랜드를 앞세워 약진할 경우 점유율 하락이 불가피하다. TV 업계 관계자는 “러스의 사업 방식이 미국에서도 통할지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한국 기업들이 퀀텀닷 TV, OLED TV 등 첨단 기술을 앞세워 중국 업체가 따라오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윤선/노경목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