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테헤란 이맘호메이니국제공항에 착륙하면 스카프와 긴소매 겉옷을 주섬주섬 챙긴다. 여권과 함께 꼭 따로 들고 타야 하는 물건이다. 수도 없이 다닌 공항이지만, ‘이란은 아랍과 다르다’는 사실에 여전히 긴장하게 된다.

테헤란에서의 하루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늘 분주하다. 처음에는 한국 고객들과 주로 만났으나 이제는 이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난다. 협업하고 있는 이란 변호사, 회계사, 법대 교수, 투자 컨설턴트, 공무원까지 다양하다.

이란은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구하고 축적하는 것이 어느 나라보다도 어렵다. 얼굴을 대면하지 않고는 중요한 업무를 하지 않는 문화인 데다 확인된 사실을 문서로 남기는 것도 매우 부담스러워한다. 이란 사람들과 이메일 또는 전화로 업무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기도 하다.

법제 정보의 경우 공개된 정보가 많지 않고 공공기관이 공시한 정보라도 막연히 신뢰하고 업무를 하기엔 위험하다. 법령은 낡아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가이드라인이나 내부 규정도 미비하며, 실무가 법규정과 다르게 운영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확인됐다고 생각했던 정보조차 담당자와 시기에 따라 변하니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이란의 한 자유무역지구 감독기관 관련 규정에 명시된 (특별)투자 신청을 위해 사전협의를 하려고 하니 “이제까지 선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며 “일단 투자 신청을 하면 그때 논의한 후 절차나 요건에 대해 알려주겠다”고 한 적도 있다.

조세 관련 법률안이 이란 의회를 통과해 곧 시행될 것이라는 언론보도를 본 고객이 해당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구하려다 실패한 경우도 있었다. 해당 법률안은 이란 의회에서만 의결된 상태였다. 의회를 통과한 모든 법률안이 헌법수호위원회(Guardian Council) 승인을 거쳐야 하고, 승인 전에는 법안 내용이 공개되지 않는데 해당 고객 본사는 처음에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해 곤혹스러워하기도 했다.

이렇게 변호사의 전통적인 업무 방식으로 처리할 수 없는 문제가 대부분이어서 매일 고민의 연속이다. 종종 지평 해외지사장들의 단체대화방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지평이 오랫동안 해외사업에 공을 들여왔고 나 역시 그 최전선에 서 있다고 막연히 생각만 했는데, 이란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서야 그 위력을 실감하게 됐다. 10년간의 묵묵한 투자 끝에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베트남 지사와 경제제재 이전부터 진출을 준비했던 미얀마 지사의 생생한 경험은 큰 힘이 된다. 중국과 러시아, 인도네시아 지사를 통해 한국 고객은 물론 이란에 진출하고자 하는 외국 고객들의 문의도 들어오고 있다.

중동에 진출한 지 30년이 된 영국 로펌의 두바이 사무소에서 파견근무를 한 경험도 큰 도움이 됐다. 로펌이 자국 기업과 함께 해외시장에 진출해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정보와 네트워크의 중심에 자리 잡고 나아가 현지의 제도 개선에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은 많은 자극이 됐다.

당장 1년 뒤를 예측하기도 어렵다. 다만 10년쯤 후에는 이란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많은 한국 고객들과 웃으며 옛날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