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윤구 씨(32)는 여름철 더위를 달래기 위해 식사를 한 뒤 근처 커피숍을 찾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는 한다. 커피를 다 마신 뒤 남은 얼음을 아작아작 깨물어 먹으면 더위와 함께 업무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얼마 전부터 얼음을 씹을 때마다 턱관절에 통증이 느껴졌다. 밥을 먹거나 입을 벌릴 때면 턱에서 소리도 났다. ‘잠깐 그러다 말겠지’ 하고 넘겼지만 매일 아침 통증이 계속됐다. 병원을 찾은 그에게 의사는 “잠을 자면서 이를 가는 습관 때문”이라고 했다.
박씨처럼 턱관절 통증이나 장애를 호소하는 환자가 늘고 있다. 턱관절은 턱뼈와 머리뼈 사이에서 두 뼈를 연결하는 관절이다. 양쪽 귀 바로 앞쪽에 있다. 턱관절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턱관절 장애라고 한다. 얼음과 같이 딱딱한 음식을 씹어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 중 상당수는 이갈이 등 잘못된 수면 습관이 원인이다. 이갈이는 질환으로 인식하지 않고 방치해 병을 키우기 쉽다. 여름철 환자가 증가하는 턱관절 장애의 증상과 원인, 턱관절 장애를 일으키는 수면 중 이갈이 등에 관해 알아봤다.

이갈이 심하면 턱관절 장애 올 수도

턱관절은 턱 운동의 중심축 역할을 한다. 턱관절은 주변 근육 인대 디스크 턱뼈 등과 어우러져 입 벌리기, 씹기, 말하기, 삼키기 등의 복합적인 활동을 담당한다. 턱관절 장애는 나쁜 습관, 외상, 교합 부조화, 심리적 요인 등으로 생긴다. 단단하고 질긴 음식을 즐겨 먹는 식습관, 앞니로 손톱이나 다른 물체를 물어 뜯는 행위, 평소 이를 꽉 깨무는 습관 등이 원인이다.

음식을 먹을 때 한쪽으로만 씹는 습관, 입을 너무 자주 크게 벌리는 것, 턱 괴기, 옆으로 누워 자는 수면 자세 등도 턱관절 장애를 가져오는 나쁜 습관이다. 스트레스·불안·우울·긴장·신경과민 등 심리적 요인, 만성 진동·소음 등 환경적 요인, 법적 소송·가정이나 직장에서의 불화 등 사회적 요인도 턱관절 장애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류머티즘 관절염, 강직성 척추염 등의 질환이 있어도 턱관절 장애가 생긴다.

이갈이도 턱관절 통증이나 장애를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이다. 이갈이는 잠을 잘 때 이를 갈거나 꽉 깨무는 것을 말한다. 황진혁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치과 교수는 “턱관절 통증이나 두통으로 병원을 방문했다가 이갈이로 진단받는 환자가 늘고 있다”며 “이갈이 환자의 66~84%가 안면 부위 통증을 함께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나 턱관절 통증이 있으면 이갈이가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입 못 벌리면 턱관절 장애 의심

턱관절 장애의 대표 증상은 통증이다. 음식을 씹거나 하품할 때 양쪽 귀 앞의 아래턱뼈와 저작(咀嚼: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근육에 통증이 느껴진다. 입을 열 때마다 턱 관절에서 딱딱거리는 소리가 나고 입과 턱의 움직임이 제한된다.

턱관절 장애는 관절원판장애, 관절염, 탈구, 강직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관절원판장애는 턱관절 속에 들어 있는 디스크가 원래 위치를 벗어난 상태를 말한다. 초기에는 입을 벌리거나 다물 때 턱관절에서 달각거리는 소리가 난다. 별다른 증상이 없다가 시간이 지나면 턱이 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보다 증상이 진행되면 갑자기 입이 벌어지지 않으면서 턱관절에서 심한 통증을 느낀다.

관절염이 있으면 관절이 아프고 음식을 씹거나 턱을 움직이는 것에 불편을 느낀다. 관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기도 한다. 관절염이 악화하면 턱관절 강직이 일어나 입이 잘 벌어지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이 어려워진다. 턱관절과 턱 근육은 기능적으로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때문에 관절병과 턱 근육병이 함께 발생하는 일이 많다.

턱 근육에 문제가 생기면 근긴장, 근막통, 근염, 근경련, 근경축 등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 중 근긴장, 근막통은 근육에 피로가 쌓였을 때 주로 생긴다. 근염은 외상이나 감염 때문에, 근경련은 중추성 원인이나 전해질 대사에 장애가 있을 때 잘 생긴다. 내분비 기능에 이상이 있거나 심리적 원인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턱 관절과 근육에 모두 이상이 있으면 통증 때문에 입을 벌리거나 음식을 씹는 것에 불편을 느낀다. 통증은 목, 어깨 등으로 퍼지기도 한다. 턱관절 장애로 진단 나면 원인이 되는 이갈이 습관을 교정하는 치료를 한다. 환자 상태에 따라 약물치료나 물리치료도 한다.

전체 인구의 8% 정도가 이갈이 습관

턱관절 장애와 연관이 큰 이갈이 습관을 가진 환자는 전체 인구의 8% 정도다. 유소년기에 많이 나타난다. 11세 미만 아동은 유병률이 40%에 이른다. 수면 이갈이는 18~25세 인구의 15%가 앓고 있는 흔한 질환이다.

이갈이를 하면 인체의 세 부분에 영향을 준다. 치아 마모가 가장 흔하다. 사람의 치아는 수직적 하중에는 강하지만 수평적 하중에는 약하다. 이갈이를 하면 치아가 비정상적으로 마모될 수 있다. 턱관절에도 무리가 온다. 밤새 이를 갈면 턱관절이 상하고 통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두통도 유발할 수 있다. 턱을 움직이는 근육 중 머리와 가까운 교근과 측두근을 계속 사용하면 두통이 발생하기도 한다.

황 교수는 “이갈이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데다 이갈이가 주로 수면 중 발생하기 때문에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며 “이갈이 치료를 장기간 미루면 턱관절에 무리가 와 턱관절의 기능적 이상을 초래하고 심한 경우 입이 안 벌어져 턱관절 수술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갈이를 할 때는 음식을 씹을 때보다 2~10배 이상 강한 힘이 치아에 가해진다. 치아 표면은 물론 잇몸과의 경계인 치경부가 마모되고 치아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치아파절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습관을 교정하지 않으면 임플란트를 한 뒤에도 관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갈이를 방치하면 만성 턱관절 장애와 함께 수면 무호흡 등도 생길 수 있다. 장기간 이갈이를 하면 사각턱 등 변형에 의한 외모 변화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갈이 증상 있으면 반드시 치료

턱관절 장애를 막기 위해 원인이 되는 이갈이 문제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갈이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치아 마모 상태를 확인하고 턱관절을 무리하게 사용했는지 알아보기 위한 근전도검사를 해야 한다. 전체 치아를 덮는 교합 안정장치를 착용한 뒤 잠을 자면 이갈이를 했는지 장치에 표시돼 이갈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최영찬 선치과병원 구강내과 과장은 “아침에 입이 한 번에 벌어지지 않고 턱이나 관자놀이에 당기거나 뻐근한 통증이 나타난다면 이갈이를 의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인 모를 치통이나 두통도 이갈이가 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황 교수는 “스트레스는 오랫동안 이갈이 원인이나 악화 요인으로 여겨져 왔다”며 “이갈이를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이갈이는 근본적인 치료 방법이 없다. 다른 질환이 생기는 것을 예방하는 치료를 한다. 교합 안정장치를 착용하면 이갈이 때문에 치아와 치아 주변 조직이 상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1~3개월 간격으로 정기 점검을 받으며 장착해야 한다. 저작근에 보툴리늄 독소를 주사해 근육이 수축하는 것을 줄이는 치료도 한다.

도움말=황진혁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치과 교수, 최영찬 선치과병원 구강내과 과장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