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외로운 날엔 / 풀도 눈을 뜬다 // 외로움에 몸서리치고 있는 / 하늘의 손을 잡고 // 그윽한 눈빛으로 / 바라만 보아도 // 하늘은 눈물을 그치며 / 웃음 짓는다 // 외로움보다 독한 병은 없어도 / 외로움보다 다스리기 쉬운 병도 없다 // 사랑의 눈으로 보고 있는 / 풀은 풀이 아니다 땅의 눈이다.”(‘모데미풀’ 전문)

모데미풀은 지리산 높은 곳에 많이 사는 미나리아재빗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5월께 피는 꽃의 지름은 2㎝ 정도로, 하얀 꽃잎이 사방으로 뻗어 있다. 꽃잎이 모이는 꽃의 중간 부분은 노란색·하얀색·초록색으로 화사하다. 문효치 시인(사진)은 이를 보고 ‘땅의 눈’ 같다고 생각했다. 땅이 모데미풀을 통해 하늘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외로워하지 말라고 위로한다는 것이다.

올해 등단 50년을 맞은 문 시인이 새 시집 모데미풀(천년의 시작)을 냈다. 들꽃과 들풀에 관한 시 72편을 모은 시집이다. 뱀딸기, 익모초, 민들레, 할미꽃 등 산과 들에서 볼 수 있는 야생식물 이름을 시의 제목이나 부제목으로 붙였다. 며느리밥풀, 수크령, 개비름, 으아리 등 보통 사람이 듣기에 생소한 식물 이름도 많다. 시마다 각각의 식물을 보면서 떠오른 시상을 담았다. 들판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꿋꿋이 살아가는 들풀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가득 묻어난다.

문 시인은 이번 시집에 실린 많은 시에서 각 식물의 겉모습을 시상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모데미풀을 보면서 ‘꽃잎은 눈의 흰자위이고 암술과 수술은 검은자위인 땅의 눈’이라고 연상한 게 대표적이다. 식물의 특이한 이름도 시의 소재로 삼았다. 수록작 ‘쥐오줌풀’에선 “나는 오줌이 아니다/ 나를 오줌이라고 하는 자들에게 핏대를 올리며 반항한다(후략)”는 쥐오줌풀의 ‘항변’을 다뤘다. 내용이 난해하지 않아 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문 시인은 “고향(전북 군산)에서 어릴 때부터 산과 들을 다니며 익숙하게 봤던 식물인데 나중에 도록을 보고 이름을 확인해 시로 썼다”며 “생태계의 당당한 구성원인 이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 돼야 인간도 더불어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경수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번 시집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생명 추구에 있다”며 “문 시인은 풀꽃 하나에서도 소중한 생명을 보고 우주를 발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