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자들이 세계 최초로 차세대 ‘유전자가위’의 성능을 입증하고 이를 이용해 수입에 의존하던 실험동물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술은 3세대 크리스퍼(CRISPR-Cas9) 유전자가위를 대체할 후보여서 미국에 선수를 빼앗긴 유전자가위 특허전에서 한국이 만회할 기회를 얻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차세대 유전자가위 성능 세계 첫 규명
기초과학연구원(IBS)과 서울아산병원 연구진은 신형 유전자가위(CRISPR-Cpf1) 성능을 규명하고 이를 이용해 암과 면역부전에 걸린 실험용 쥐를 만들었다는 내용의 논문 세 편을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 7일자에 발표했다.

생물의 유전 정보를 담은 DNA를 자르고 편집하는 유전자가위는 생명과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술로 손꼽힌다. 2013년 처음 발표된 3세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DNA를 자르는 절단효소(단백질)와 크리스퍼RNA(crRNA)를 붙여서 제작한다. 길잡이 역할을 하는 RNA가 DNA 염기서열 중 목표한 위치에 달라붙으면 단백질이 DNA를 잘라낸다.

펑 장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지난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절단효소로 사용하는 Cas9을 대체할 새로운 단백질인 Cpf1을 찾아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더 작은 유전자가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외에 성능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 알려진 것이 없었다.

김진수 단장
김진수 단장
김진수 IBS유전체교정연구단장(서울대 화학부 교수) 연구진은 자체 개발한 성능 평가 방법을 이용해 Cpf1 단백질을 쓰면 더 작고, 표적의 위치를 잘 찾아가는 유전자가위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증명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Cas9 단백질이 길잡이 역할을 하는 두 종류의 RNA와 결합해야 했다. 반면 Cpf1은 짧은 크리스퍼RNA 하나만 있어도 표적을 찾아간다. 이전에는 잘라내지 못하는 부위까지 교정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연구진이 에이즈 바이러스(HIV) 유전자인 CCR5 등 인간 유전자 10개를 대상으로 교정을 시도한 결과 정확도가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32억쌍에 이르는 인간 DNA 염기서열에서 표적이 아닌 부위를 자른 일은 한 건도 없었다.

연구진은 바이오 벤처기업 툴젠과 함께 털 생성 및 면역체계에 관여하는 유전자(Foxn1)와 백색증(알비노증)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잘라내 병이 든 돌연변이 쥐도 만들었다. 신형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동물 유전자를 교정한 것은 세계에서 처음이다. 김 단장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보다 표적이 아닌 위치에서 작동할 확률이 낮아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며 “유전자 치료제와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고부가가치 농축산물 품질 개량에 활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상욱·성영훈 서울아산병원 교수 연구진은 여기서 더 나아가 암·에이즈 등 난치성 연구에 사용되는 유전자 변형 쥐를 만들었다. 연구진은 일부 유전자를 녹아웃(knock out: 특정 유전자 발현을 막음)하는 방식으로 쥐를 암과 면역 부전에 걸리게 했다. 국내에는 특허가 없어 지금까지 이들 동물은 미국과 일본에서 수입해야 했다. 이 교수는 “배아줄기세포로는 2년 걸리던 변형 쥐 생산 기간을 6개월로 줄였다”며 “한 마리에 수십만~수백만원에 달하는 실험동물 구입비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준호 IBS유전체교정연구단 연구위원은 “신형 유전자가위의 성능 검증부터 실용화 가능성까지 한꺼번에 증명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새 기술을 더 많이 따라 쓸 것으로 보인다”며 “신형 유전자가위를 3.5세대인지 완전히 다른 4세대로 봐야 할지는 앞으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