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엷은 미소…1400년 만에 만난 한·일 반가사유상
곡선이 어깨와 팔을 타고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무릎 아래에서 사방으로 퍼진 천의(天衣) 주름은 넘실거리는 물결 같다. 앉은 자세로 오른쪽 다리를 올려 발목을 왼쪽 무릎에 놓고 그 위에 살며시 손을 올려 포갰다. 오른손을 뺨에 댄 채 눈을 지그시 감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얼굴은 엷은 미소를 띤 것처럼 보인다. 보살의 무한 평정심과 자비심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번뇌에 시달리는 중생을 어떻게 구할지 고민하는 걸까.

한국과 일본의 반가사유상이 한자리에서 만났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한·일 국보 반가사유상의 만남’ 특별전 공식 개막을 앞두고 23일 두 불상을 언론에 공개했다. 한국 국보 제78호인 ‘금동반가사유상’과 일본 국보로 주구지(中宮寺) 소장품인 ‘목조반가사유상’을 함께 전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실로 들어가자 은은한 조명 아래 놓인 두 불상이 눈에 들어왔다. 전시실 오른쪽에 금동반가사유상을, 왼쪽에 목조반가사유상을 놓고 두 불상이 서로 마주보도록 했다.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반가사유상 외에 다른 전시물은 놓지 않았다.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유리로 둘러쌌는데 접근 제한선이 없기 때문에 유리 바로 앞까지 다가가서 볼 수 있다. 불상을 벽에 붙여놓지 않고 옆과 뒤에 공간을 충분히 둬서 옆모습과 뒷모습도 살펴볼 수 있게 했다.

두 불상이 취하고 있는 반가(半跏) 자세는 중생을 굽어보는 보살의 자비심을 상징한다는 게 박물관 측의 설명이다. 이는 중생의 생로병사에 대해 고뇌하는 싯다르타의 모습에서 비롯됐다. 인도 간다라 지역에서 불교 미술가들이 이런 자세로 고뇌하는 싯다르타를 그렸고, 그 모습이 중국 한국 일본으로 전파됐다. 한국의 금동반가사유상은 6세기 말에, 일본 목조반가사유상은 7세기 말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는 동으로 제작한 뒤 금박을 입혔는데 금박은 거의 벗겨졌다. 일본에선 당시 목조 불상을 제작할 때 주로 쓰던 녹나무를 소재로 했다.

권강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금동반가사유상에 대해 “미소에 어울리는 유연한 손가락과 부드러운 신체 곡선이 돋보인다”며 “당시로서는 매우 뛰어난 주조기술을 갖추고 있었기에 이렇게 두께가 일정한 불상을 제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본 목조반가사유상에 대해서는 “머리에 상투를 틀고 있는데 원래 보관(寶冠)을 쓰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나무를 깎아 11개 조각을 제작한 뒤 나중에 끼워 맞춰 불상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두 불상의 차이도 확인할 수 있다. 금동반가사유상은 허리와 팔이 실제 신체보다 훨씬 호리호리하고 머리도 인체 비율에 맞지 않게 크다. 장신구와 옷이 비교적 화려하다. 이에 비해 목조반가사유상은 비율과 곡선 등이 실제 신체에 더 가깝고 특별한 장신구가 없다. 권 연구사는 “한국 불상은 신성성이 강조됐고 일본 불상은 사실적으로 제작됐다”며 “일본 불상이 한국 불상보다 100년 뒤 제작된 게 이런 차이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금동반가사유상은 높이가 82㎝, 목조반가사유상은 167.6㎝다.

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이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이번 특별전은 24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전시는 쉬는 날 없이 열리며, 관람료는 없다. 한국 전시가 끝나면 도쿄국립박물관에서도 3주간 전시한다.

24일에는 오하시 가쓰아키 일본 와세다대 명예교수가, 다음달 3일에는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이 양국 불교미술에 대해 특별 강연한다. 제니야 마사미 도쿄국립박물관장은 “목조반가사유상을 일본 밖으로 들고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두 불상은 양국에서 유례가 없는 걸작으로, 고대 문화 교류의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글=양병훈, 사진=김범준 기자 hun@hankyung.com